12월 27일 수요일, 한살림 성남용인지부 위례 지역모임으로 "논 이야기와 볏짚공예"에 참석했어요. 플라스틱 빗자루와 청소기가 보편화된 일상에서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흘깃 봤던 빗자루는 참 멋져보였죠. 볏짚을 만져볼 기회조차 없는 도시 사람에게, 이 빗자루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몰라요. 그리고 그걸 내 손으로 직접 만든다 하니 설레기까지 합니다. 

한살림 논살림위원회 활동가님께서 벼의 한살이와 논살림위원회가 가꾸는 논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어요. 아래는 "올개심니"라고 한 해 동안 벼농사를 지어 일찍 수확한 벼를 가장 먼저 조상에게 바치고 제사 지내는 풍속 할 때 사용하는 벼 이삭인데 풍요를 상징한다 합니다.

한 켠에 놓인 볏집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빗자루가 탄생할까 기대했는데, 저 볏짚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홰기라고 이삭이 달렸던 줄기만 뽑아서 쓰기 때문에 저 많은 양에서 빗자루에 쓰일 홰기는 매우 적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볏짚에서 뽑아낸 홰기가 저 정도에요. 미니 빗자루를 만들기위해서는 모인 홰기 양의 굵기가 500원 정도여야 한다는데, 정말 열심히 했음에도....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ㅜㅜ 논살림 위원회 활동가님들의 원조로 겨우 빗자루 만들 양을 마련합니다.

모은 홰기는 4등분한 후 이삭 부분의 키를 맞춰주는 작업을 해요. 물론 마지막에 다듬기 과정이 있지만, 이 때 잘해야 버려지는 양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홰기를 뽑아낸 볏짚은 버리느냐. 아니죠! 왼쪽 사진처럼 조리개를 만들 수도 있고 새끼를 꼬아 여러 곳에 이용할 수 있어요. 초가지붕, 짚신, 바구니, 마루 깔개, 망태기, 메주를 묶는 끈 등 활용도가 참 많답니다. 그 외에 겨울철 소의 여물이 되고, 삭혀 거름으로도 씁니다. 

인고의 과정을 거쳐 완성한 제 빗자루랍니다. 매듭이 보이지 않게 끈 묶는 법을 배워 완성했어요. 아래부터 조금씩 두껍게 끈을 감아야 예쁘게 됩니다. 빗자루처럼 이삭 부분이 펼쳐지려면 물을 뿌린 후 최대한 꺾듯 펼쳐줘야하는데 이 부분이 많이 어렵더라구요. 물을 뿌리기 때문에 지끈보다는 좀 더 질긴 마끈이나 면사가 작업하기 수월했어요. 마지막으로 빗자루 끝을 다듬어 주고 손잡이 남은 부분을 잘라 주면 완성됩니다.

각자의 개성을 담은 빗자루들끼리 모아 단체 사진을 찍었어요. 정성이 담긴 귀한 빗자루 소중히 잘 사용하겠습니다.

오늘 수업을 주도해주신 강사님이 "논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습지'이다"라고 수업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논 주변은 더운 여름에도 약 3~5도 정도 온도가 낮다고 합니다. 논은 훌륭한 탄소 저장고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고마운 존재죠. 그리고 다양한 곤충들과 생명이 사는 우주이기도 하구요. 그러한 논이 비닐하우스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비닐하우스는 기본적으로 평평한 바닥에 세워야 하는데, 많은 농가가 수익창출을 위해 논을 없애고 비닐하우스를 세우는 추세라고 해요. 그만큼 지구 온도를 조절하는 습지역할의 논이 사라지고, 그 속의 생명들도 사라지고 있구요. 한철 사용한 비닐하우스는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되고, 이를 소각하면 그만큼의 이산화탄소와 유해물질이 발생하게 됩니다. 

단순히 쌀을 만드는 수단으로서 벼가 아닌, 지구와 호흡하며 사람과 생명에게 이로운 우리 조상들의 벼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사님이 인용하신 주자의 말이 매우 깊이 와닿았습니다.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

베어내자니 모두가 풀이고 두고보자니 모두가 꽃이다.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죠. 올해는 코로나-19 이슈가 있어 규모가 축소된 것 같지만 많은 기업들이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저 또한 전단지에서 본 행사 하나가 눈에 띄어 참여했죠.

PP소재 용기 5점 이상을 기부하면 플라스틱 화분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기부 참여 리워드로 친환경 타이벡 소재 에코백을 준다는 것이었어요. 에코백이면 에코백이지 "친환경 타이벡 소재"라고 하니 호기심이 생겼고, 마침 모아 둔 플레이도우 통들이 PP 재질이라 가지고 갔어요. (여담이지만, 모아둔 약통도 PP소재라 같이 챙겨갔는데 이건 용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퇴짜 맞았답니다. ㅜㅜ) 리워드로 받은 "친환경 타이벡 소재 에코백"은 아래와 같았어요.

 

 

알고보니 2019년 이니스프리에서 주관한 행사에서 제공받았던 에코백과 같은 소재였고, 이제야 이 소재의 이름이 타이벡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이 소재의 에코백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았고 불투명하고 두꺼운 비닐봉투 느낌이었거든요. 매끈한 듯 거칠거리는 질감도 제 취향은 아니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유행처럼 이 소재를 사용한 소비재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겁니다. 특히 "친환경"을 타이틀로 건 행사에서요. 패션잡화 쪽에서도 친환경을 표방한 제품라인을 선보이면서 이 소재를 적극 이용하는 것을 보았어요.

거슬러 올라 생각해보니 제가 경험한 최초의 타이벡은 놀이공원 입장 시 팔목에 채워주는 팔찌형 입장권이었어요. 종이처럼 생긴 것이 더운 여름에도 축축해지지 않았고 다 놀고 난 후 벗겨내기도 쉽지 않았죠. 그 정도로만 사용되었던 소재가 친환경으로 각광받다니 세상이 변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타이벡은 정말 친환경 소재일까?

타이벡은 어떤 소재?

타이벡은 한마디로 특수 부직포 소재입니다. 타이벡은 표기할 때 꼭 Tyvek®로 표기하는데 듀폰(DuPont™)사에서 특허를 낸 합성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종이같이 생겼지만 고밀도 폴리에틸렌 섬유로 별도의 화학물질 첨가 없이, 오직 열과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신소재 부직포라고 합니다.

타이벡은 종이 같은 질감을 주지만 잘 찢어지지 않고 방수 성질을 가지고 있어 보호복, 의료용 포장재 등에 많이 이용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용 보호복으로도 이 소재를 이용해 많이 제작되고 있다고 합니다. 내구성도 높고 부드러운 재질이라 생활잡화의 원단으로도 각광받고 있어요. 일반 부직포나 종이보다도 먼지가 적게 나오기 때문에 침구류에도 사용된다고 해요. (출처 : 듀폰 타이벡 블로그)

타이벡이 친환경 소재로 불리는 이유는?

타이벡이 친환경으로 불리는 첫번째 이유는 화학물질 첨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레이온 등 많은 플라스틱 섬유들이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첨가하여 만들지만 이 소재는 오직 열과 압력으로만 제작된다고 합니다. 두번째 이유는 먼지 발생이 적어 건강하다는 거죠. 방수, 방습, 멸균 등의 효과도 생활과 산업 곳곳에서 대안제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튼튼하여 오래 쓰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고 합니다. 일반 비닐이나 종이보다 내구성이 좋아 반복해 사용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00% HDPE(폴리에틸렌)으로만 제작되었기 때문에 사용한 후에 HDPE 소재만 따로 모아 다시 자원으로 활용 가능하다고 합니다.

현실에서는 과연...

처음 '친환경 소재 타이벡'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소재가 HDPE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심 재사용된 HDPE 소재이길 바랐습니다. 비닐봉투로 상징화된 HDPE는 가벼운 특징 상 플라스틱으로 모아 재활용되기 어렵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비닐"로 따로 분리배출하고 있으며 이렇게 모인 비닐은 대부분 난방연료로 사용된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게 일회용으로 버려지는 HDPE를 모아 더 튼튼한 소재의 천으로 만들고 사용처를 넓힌 리사이클 소재라면 '친환경'에 걸맞는 소재임을 백번도 인정했을 거에요. 하지만 자료를 찾아봐도 과거 그러한 캠페인을 한 흔적이 있는 듯 보였지만, 현재 판매되고 있는 타이벡 소재가 리사이클링 소재는 아님을 알게됐죠.

더군다가 많은 제로웨이스트 블로거들이 타이벡의 '친환경' 타이틀에 저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00% 재활용 가능한 소재라 하더라도 타이벡 소재만 모을 수 있는 현실적 상황이 따라와주지 않는다면 이 소재는 재활용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참고 : Loving the Earth? Avoid Tyvek® Wristbands and Other Tips for a Climate-Friendly Event)

결국 타이벡도 플라스틱입니다. 경량성, 방수성, 내구성 모두 기준 HDPE 소재의 공통된 특징일 뿐이죠. 그래서 저는 듀폰사의 타이벡 소재를 '친환경'으로 홍보하는 것이 불편합니다. 타이벡 소재 에코백도 여느 비닐봉투와 마찬가지로 바다에 버려지면 가짜 해파리처럼 둥둥 떠다니고, 땅에 버려지면 수백년 동안 썩지 않아요.

이 소재를 만든 듀폰사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하지만 "친환경"이라는 말에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시는 많은 분들이 속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듀폰사와 테프론

이 타이벡을 만든 듀폰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최근에 영화화된 적이 있습니다. 배우이자 환경 운동가인 마크 러팔로가 제작/주연을 한 <다크워터스>가 그 영화인데요. 눌러붙지 않는 프라이펜의 대명사인 테팔 프라이펜을 탄생하게 만든 테프론 프라이펜의 유해성을 파헤친 실화 바탕 영화죠.

과불화옥탄산(PFOA, PerFluoro Octanoic Acid), C8로 알려진 이 인공 화합물은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팬의 코팅제 '테프론' 속 화학물질입니다. 듀폰사는 이를 사용한 자사 제품이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다하고 지속적으로 사용했으며 폐기물을 무단 방류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마을 주민과 공장 직원들은 심각한 중증 질환을 앓게되고, 기형아 출산도 이어지게 됩니다. 듀폰사는 이 사실을 40년 넘게 은폐해왔습니다. 2017년 미국 법정에서 듀폰사가 6억7100만 달러(약 8천억원) 배상을 선고 받으며 세상에 알려지게 됐죠.  

이 PFOA 독성에 대한 영화 속 대화 중 하나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만약 이걸 마신다면요?" (빌럿)
"마치 타이어를 삼키면 어떠냐고 묻는 셈인데, 그러고 싶어요?" (화학전문가)

(참고 : 중앙일보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팬의 배신…"생명체 99% 오염시켰다">)

 다크워터스 영화소개 바로가기 >>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펜으로 유명한 브랜드 테팔은 이 테프론 프라이팬에서 시작합니다. 낚시 도구에 사용했던 테프론 코팅을 주방 프라이팬에 사용해본 것을 계기로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을 생산해 판매하게 되고 명실상부한 주방도구로서의 입지를 굳혔죠. (출처 : 테팔의 역사)

https://youtu.be/HKDYck7gKE8

당시 듀폰사는 260도 이상 가열하면 테프론에서 해로운 물질이 나올 수 있으나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260도 이상 가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테팔 프라이펜으로 알려진 테프론 코팅 프라이펜은 빈 상태로 2분만 가열해도 380~390도까지 이르고 유해한 가스 입자를 배출한다고 하네요.  

'무해함'과 '친환경'의 온도 차이

우리는 경험으로 화학기업의 '무해'와 '친환경'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 다르다는 것을 그동안 많이 체험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이슈가 그렇고 일회용 생리대가 그렇고, 이 테프론 프라이펜도 유사한 이슈라고 생각됩니다.

타이벡 소재가 테프론 소재처럼 유해하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여타 플라스틱보다 화학물질을 덜 사용했으니 다른 플라스틱 소재보다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이 아마도 맞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에코백을 만드는 데 있어서 굳이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 기준에서는 오래 사용해도 결국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되는 이 소재보다는 손으로 대강 짠 면실 에코백이 '친환경'이라고 보여집니다.

기업의 '친환경'이라는 수식어가 제로웨이스트의 기준과 상이함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한다면, 지구에 덜 해가되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친환경' 수식어를 꼼꼼이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상 노모어였습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