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작은도서관은 올해 책친구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홍보용 배너판이 5월부터 11월까지 열일하였습니다. 시일이 지난 배너판은 처치하기 난감합니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배너의 재질은 패트지입니다. 잘 찢어지지 않고 색 표현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고, 필요에 따라 코팅을 하기도 하죠. 다 쓴 배너판은 플라스틱 재질이기 때문에 플라스틱 배출 같지만, 실제로는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되기 어렵기 때문에 종량제봉투로 배출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자주 발생하는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쓰고 버리기 참 아깝더라구요. 쓰임을 실용적으로 잇는 방법도 있지만, 추억이라는 감성으로도 이을 수 있습니다. 

저희 작은도서관에는 계절마다 메시지를 나누는 인테리어용 나무가 있어요. 연말연시를 맞이해 작은도서관 방문객들을 위해 소원을 오너먼트에 적어 나무에 다는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가위질해 둥글게 배너를 자르고 구멍을 뚫는 수고를 했지만, 취지에 공감하고 스티커와 펜으로 알록달록 멋지게 오너먼트를 만들어준 방문객분들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12월 27일 수요일, 한살림 성남용인지부 위례 지역모임으로 "논 이야기와 볏짚공예"에 참석했어요. 플라스틱 빗자루와 청소기가 보편화된 일상에서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흘깃 봤던 빗자루는 참 멋져보였죠. 볏짚을 만져볼 기회조차 없는 도시 사람에게, 이 빗자루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몰라요. 그리고 그걸 내 손으로 직접 만든다 하니 설레기까지 합니다. 

한살림 논살림위원회 활동가님께서 벼의 한살이와 논살림위원회가 가꾸는 논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어요. 아래는 "올개심니"라고 한 해 동안 벼농사를 지어 일찍 수확한 벼를 가장 먼저 조상에게 바치고 제사 지내는 풍속 할 때 사용하는 벼 이삭인데 풍요를 상징한다 합니다.

한 켠에 놓인 볏집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빗자루가 탄생할까 기대했는데, 저 볏짚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홰기라고 이삭이 달렸던 줄기만 뽑아서 쓰기 때문에 저 많은 양에서 빗자루에 쓰일 홰기는 매우 적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볏짚에서 뽑아낸 홰기가 저 정도에요. 미니 빗자루를 만들기위해서는 모인 홰기 양의 굵기가 500원 정도여야 한다는데, 정말 열심히 했음에도....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ㅜㅜ 논살림 위원회 활동가님들의 원조로 겨우 빗자루 만들 양을 마련합니다.

모은 홰기는 4등분한 후 이삭 부분의 키를 맞춰주는 작업을 해요. 물론 마지막에 다듬기 과정이 있지만, 이 때 잘해야 버려지는 양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홰기를 뽑아낸 볏짚은 버리느냐. 아니죠! 왼쪽 사진처럼 조리개를 만들 수도 있고 새끼를 꼬아 여러 곳에 이용할 수 있어요. 초가지붕, 짚신, 바구니, 마루 깔개, 망태기, 메주를 묶는 끈 등 활용도가 참 많답니다. 그 외에 겨울철 소의 여물이 되고, 삭혀 거름으로도 씁니다. 

인고의 과정을 거쳐 완성한 제 빗자루랍니다. 매듭이 보이지 않게 끈 묶는 법을 배워 완성했어요. 아래부터 조금씩 두껍게 끈을 감아야 예쁘게 됩니다. 빗자루처럼 이삭 부분이 펼쳐지려면 물을 뿌린 후 최대한 꺾듯 펼쳐줘야하는데 이 부분이 많이 어렵더라구요. 물을 뿌리기 때문에 지끈보다는 좀 더 질긴 마끈이나 면사가 작업하기 수월했어요. 마지막으로 빗자루 끝을 다듬어 주고 손잡이 남은 부분을 잘라 주면 완성됩니다.

각자의 개성을 담은 빗자루들끼리 모아 단체 사진을 찍었어요. 정성이 담긴 귀한 빗자루 소중히 잘 사용하겠습니다.

오늘 수업을 주도해주신 강사님이 "논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습지'이다"라고 수업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논 주변은 더운 여름에도 약 3~5도 정도 온도가 낮다고 합니다. 논은 훌륭한 탄소 저장고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고마운 존재죠. 그리고 다양한 곤충들과 생명이 사는 우주이기도 하구요. 그러한 논이 비닐하우스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비닐하우스는 기본적으로 평평한 바닥에 세워야 하는데, 많은 농가가 수익창출을 위해 논을 없애고 비닐하우스를 세우는 추세라고 해요. 그만큼 지구 온도를 조절하는 습지역할의 논이 사라지고, 그 속의 생명들도 사라지고 있구요. 한철 사용한 비닐하우스는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되고, 이를 소각하면 그만큼의 이산화탄소와 유해물질이 발생하게 됩니다. 

단순히 쌀을 만드는 수단으로서 벼가 아닌, 지구와 호흡하며 사람과 생명에게 이로운 우리 조상들의 벼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사님이 인용하신 주자의 말이 매우 깊이 와닿았습니다.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

베어내자니 모두가 풀이고 두고보자니 모두가 꽃이다.

며칠 전 눈에 띄는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국내 최초 '녹색특화매장'이 시범운영된다는 뉴스였는데요, 올가홀푸드 방이점이 제 1호 매장으로 지정되었는 내용이었어요. '녹색특화매장'은 환경부가 운영하는 '녹색매장'을 확장·발전시킨 개념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녹색소비문화 확산을 위해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한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매장이라고 합니다.

 

올가 방이점 '친환경 생활용품 존'

(서울=연합뉴스) 올가홀푸드가 19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가 방이점에서 국내 최초 '녹색특화매장' 시범운영 기념식을 가졌다고 이날 밝혔다. '녹색특화매장'은 환경부가 운영하는 '녹색매장'

news.v.daum.net

지난 19일에 기념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문을 연 올가홀푸드 방이점을 다녀왔습니다. 올가홀푸드 방이점은 전국 올가 매장 중 가장 크다고 해요. 몇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고, 당시 예쁜 외관과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녹색특화매장으로 지정되면서 3R(Refill, Recycle, Reduce)의 제로웨이스트 철학을 반영해 리뉴얼되었다고 하기에 매우 반가웠지요. 3R은 Refill(필요한 만큼만 리필 구매), Recycle(100%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패키지 만들기), Reduce(플라스틱 사용량 감소)를 뜻합니다. 1년 전부터 알맹시장을 필두로 전국 곳곳에 리필샵이 자생하고 있는 가운데 친환경 먹거리 매장 중 선두 그룹인 올가에서 리필 스테이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궁금했습니다. 어떤 제품을, 어떤 형태로, 다양하게 운영하는 지. 그래서 주말을 맞이해 리필 용기들을 한아름 가지고 매장을 방문했습니다. 

가장 먼저 무포장 야채코너가 눈에 뜁니다. 파프리카, 애호박, 오이, 무 등 다양한 유기농 및 친환경 인증 야채와 채소들이 예쁘게 담겨있었어요. 특이한 것은 각 농산물 가격표 옆의 인증서였는데요. 글자가 작아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유기농 또는 친환경 인증 내용을 담은 것 같았습니다. 뭔가 건강한 신뢰의 아우라가 느껴졌죠.

마침 당근을 사야하기에 하나를 프로듀스백에 담습니다. 셀프 저울 이용방법에는 용기를 올려놓고 영점을 맞추라는 내용이 가장 먼저 적혀있었어요. 알아서 척척 잘하지만, 혹시나 어려워하지 않을까 직원분이 달려와 주십니다. :)

오른쪽 과일 코너에도 포장이 안된 과일들이 바구니에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어요. 배의 경우 스티로폼 재질 보호재가 끼워져 있었지만, 필요한 만큼만 담아서 살 수 있으니 좋았습니다. 아직 프로듀스백이나 개인 용기 이용이 낯설기에 군데군데 종이봉투를 둔 것이 눈에 띄었어요. 롤비닐보다 보기는 좋았지만, 이마저도 사용하지 않도록 프로듀스백이 일상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패키지로 판매하는 과일의 경우 아래와 같은 종이박스에 담았는데 어찌나 예쁘던지. 비닐이 아니어도 내용물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으니 분리배출도 쉽고 플라스틱 쓰레기도 발생시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비닐 덮개 없는 과일 상자 포장과 더불어 패키지에 대해 신경 쓴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건조 멸치의 경우에는 곡물 껍질을 원료로 만든 포장재를 사용하고 있었구요. 생선과 고기를 담는 트레이는 옥수수 전분으로, 비닐은 슈가랩을 이용하고 있었어요. 풀잎 모양의 Zero Waste 표시가 있는 제품은 이러한 노력이 담긴 올가만의 제품입니다.

 

 

그리고 가장 기대했던 리필 스테이션으로 갔어요. 이곳에는 '에코스토어' 브랜드 제품들이 입점되어 있는데, 리필 스테이션에는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 2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저와는 친숙한 브랜드가 아니지만, 지인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 온 친환경 세제 브랜드로 특히 젖병세정제가 아기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반은 리필하는 공간, 반은 에코스토어 완제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자주 방문한 지역 리필샵에는  주방세제, 구연산, 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 소프넛 등이 리필 가능하도록 판매하고 있기에, 다소 부족한 느낌은 들었어요. 리필을 화두에 내세운 만큼 무언가 새로운 대안이 있길 바랐나봐요. 가령 샴푸나 트리트먼트 등 욕실제품도 리필이 가능한...

리필샵을 이용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능숙하게 저울을 만지고 가져온 빈 통에 세제를 담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세제가 너무 찔끔찔끔 나오는 거에요. 담당하시는 직원분이 달려오셔서 여러가지 긴급조치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10분 동안 겨우 350g 담았어요. 아래 오른쪽 사진처럼요. 

이건 아니다 싶어, 직원분께 수도꼭지를 교체하거나 통 내부 막힌 부분을 뚫어야겠다 말씀 드렸고, 수도꼭지 아래에 리필통을 놓을 수 있는 받침대가 있어야지 무겁게 세제가 담길 동안 고객이 계속 들고 있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전달했어요.  더이상 리필은 포기. 다음을 기약하며 나왔습니다.

올가 방이점만의 독특한 점 하나는 나물 반찬 코너입니다. 제철 나물로 만든 건강한 반찬을 담아서 구매할 수 있는데, 개인 용기로 반찬을 리필하면 할인 혜택도 준다고 하니 이용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 경우 과거 대형마트 반찬 코너에서 개인 용기를 내밀었다가, 위생과 안전 문제로 담아줄 수 없다고 거절 당한 경험이 있기에 이런 적극적인 용기 사용 안내문이 정말 반갑더라구요.

이 매장의 다소 아쉬운 점은 친환경 기성품 코너가 작은 거에요. 정부가 인정한 친환경 제품들만 모아놓은 코너가 있는데, 이러한 기성품들은 한살림이나 생협이 훨씬 종류가 많고 다양한 것 같아요. 

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친환경 인증이라는 제도하에 물티슈, 일회용 식기들, 플라스틱 트레이에 담긴 소량의 제품들이 메인에 진열되는 것은 제로웨이스트 방향성에는 맞지 않다고 봅니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생분해 소재 대안 수세미는 있으나 천연 수세미는 없고. 인증 받은 물티슈는 있지만 소창 행주나 다회용 대안품은 없었어요. 

제로웨이스트를 평소 실천하시는 분들이 운영하는 제로웨이스트샵은 진정성은 가득하지만 규모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유통업체의 제로웨이스트샵은 규모는 있으나 생활 속에서 부딪히고 깨닫는 세세한 고민과 철학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100%는 무리더라도 매장의 50% 이상이 플라스틱이나 비닐, 과대포장 없이 진열되어 있고, 제로웨이스트 생활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 매장을 기대한 것 같아요. 매장을 나오면서 올가의 도전이 소규모로 분투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샵 운영자분들과 맥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한 리필스테이션을 찾는 고객들이 훨씬 많아져, 트레이에 담긴 세제보다 리필해서 쓰는 세제가 더 인기가 있고 일상화되는 바람을 해봅니다. 용기를 가져오는 용기가 일상화되고, 트레이나 포장재는 선택 중 최후의 선택이 되기를 또한 기대하구요.

이 매장을 1호로 전국에 제로웨이스트 고민을 진정하게 담은 녹색특화매장들이 많이 생기고 번창하면 좋겠습니다. 올가 방이점의 철학이 담긴 현수막 사진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나를 위해, 지구를 위해.

 

무척 더운 토요일이었어요. 두 달 전쯤 사전 예약을 했던 비 존슨 초청 강연이 열리는 날이었죠. 신반포역 근처의 덜위치 컬리지에 도착. 이 곳은 작은 영국이더라구요. 외국인학교라 어느 정도 분위기는 예상했지만 다양한 인종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영어... 참 이국적인 느낌이었죠. 이날은 본교 400주년 기념일인 동시에 서초구에서 개최하는 첫 세계인의 날이라고 해요. 이 작은 영국 내부는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입구에서 간단히 등록을 하고 들어갔더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나는 쓰레기없이 살기로 했다' 책 판매부스였어요. 2013년도에 출간해 절판되었다가 비 존슨 내한 기념으로 재인쇄하게 됐는데요. 강연 전에 책을 읽어야지 하고 주변 도서관에 알아봤는데 결국 제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아쉬웠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이렇게 아주 많이 만나네요. 책은 미리미리 구매하기!

행사 소개 팜플렛에 제로웨이스트 마켓이 함께 열린다고 적혀 있어 찾아갑니다. 많은 부스가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대표적인 제로웨이스트 브랜드는 모두 있었어요. '매거진 쓸', '더 피커', '예고은', '다시쓰는 그랩', 'Gachi Soap', 'FRUTO', 'WasteUpso', 'Fresh Bubble' 등이 있었어요. 공기정화 식물도 함께 팔고 있었고, 'WasteUpso'는 포장지 없는 컨셉 스토어를 지향하듯이 일부 제품들에 한해 가져온 용기에 담아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어요. 모든 부스에서 지갑을 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꽁뜨' 매대에서 핸드메이드 생리대 책을 한권 사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Fresh Bubble' 부스에서는 소프넛 사용에 대해 실용적인 조언을 얻고, 'Gachi Soap' 부스에서는 샘플 비누를 얻었습니다. 이런 셀러들이 있어 참 고맙고 다행이에요. 좋은 제품들이 더 널리 사용되기를 살포시 기대해봅니다.

그 와중에 비 존슨이 친히 제로웨이스트 마켓을 방문해주셨어요. 각 부스를 돌며 같이 사진도 찍고 판매되는 물건도 구경하고 그랬죠. 부스의 사람들 눈이 반짝였어요. 영웅을 직접 만나는 기분으로... 저 또한 어부지리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비 존슨을 만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네요.

마켓이 그리 크진 않았기에 한 바퀴 천천히 돌아도 시간이 꽤 많이 남았어요. 4층 강연장으로 이동해 출석 인증 도장 손등에 쾅 찍고 대기. 점점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2시부터 입장 시작. 강연 전까지 매거진 쓸 광고와 지상파 방송의 플라스틱 관련 다큐멘터리 클립이 상영됩니다. 일찍 강연장에 들어온 저는 내빈석 다음으로 가장 앞 자리에 앉을 수 있었어요. 

2시 30분에 식이 시작됩니다. 시작과 함께 비 존슨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와 달리, 제1회 서초구 세계인의 날 기념식이 먼저 시작됩니다. 국민의례와 내빈 소개, 서초구청장과 덜위치컬리지학장의 인삿말이 이어집니다. 비 존슨의 강연으로 오롯이 한 시간이 채워지길 기대했는데, 10분으로 예정되었던 개회식은 점점 더 길어지네요. 덜위치컬리지 학생들의 환경관련 메시지가 끝나자 비로소 강연이 시작됩니다. 

비 존슨은 하얀 바지에 하얀 티, 그위에 멜빵을 한 의상에 높은 굽의 샌들을 신고 나왔어요. 한 손에는 텀블러, 한 손에는 하얀 면포를 들고 무대에 섰죠. 면포 안에는 2018년 그녀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 전부를 담은 유리병이 있었어요. 후에 소개하기를 그녀의 의상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웃들 중 한 가지 조합이고, 샌들은 얼마전 중고 시장에서 구입한 거라고 합니다.

강연 사진은 아래 한 장이 전부에요. 그녀가 요청했죠. 이 소중한 순간을 사진 찍는 데 허비하지 말고 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고. 아래 사진은 강연 시작 직전 무대 세팅을 점검하는 비 존슨이랍니다.

강연 내용은 책의 축약 버전입니다. 책에서 강조했던 5R(Refuse, Reduce, Reuse, Recycle, Rot)을 실제 경험담과 함께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그녀의 외모 콤플렉스인 얇은 입술을 보완하기 위한 플라스틱 없는 화장품으로 쐐기풀류를 직접 입술에 발라 본 이야기, 화장지 대신 이끼류를 모아 사용하려 했던 이야기, 식초로 머리를 헹구는 노푸 생활을 6개월 정도 하다가 남편이 더 이상 냄새를 못참겠다하여 그만 두게 된 이야기 등 현재의 그녀가 있기까지 그녀가 겪었던 엉뚱한 듯한 경험담이 청중들을 즐겁게 합니다. 

주방에서, 침실에서, 아이들방에서, 옷방에서, 창고에서 What If(만약에)를 염두에 두고 남겼던 물건들을 과감히 포기하니 쓸레기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질도 유쾌해졌다고 말합니다. 공간에 돌보던 시간과 노력을 가족과 취미, 추억에 투자하게 됐다는 얘기도 했죠. 또한 그녀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유연함'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유연함이란 실천에는 단 한가지만의 해법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의 유연함입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버터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는 것은 좋은 경험이긴 하나 오히려 생활을 낭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하죠. 노동의 고통을 줄이고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유연함이죠. 이는 제로웨이스트 이슈와 관련해 상대방과의 대화에서도 발현됩니다. 환경과 실천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어요. 이견을 존중하되 본인만의 신조를 유지하는 것, 이것도 바람직한 유연함이라 할 수 있죠.

강연 내내 그녀의 프랑스 악센트가 섞인 유머에 함께 웃다가, 핵심내용에 대해서는 같이 진지해졌죠. 그녀는 깐깐했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녀의 미소는 많은 것을 경험해 본 사람만 보일 수 있는 거였죠. 직접 청중의 질문에 답하는 Q&A 시간에 그녀는 더욱 돋보였습니다. 누군가 학교에서의 제로웨이스트 교육 방법에 대해 물었어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죠.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가와 별개로 어른들의 행동은 그런 교육과 이질적일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는 가를 논의하기 전에 어른이 먼저 실천해야 한다(의역한 것이라 내용에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제 고민 중 하나인 학용품에 대한 조언도 있었습니다. 매 학기 구매해야 하는 학용품 리스트가 많은데, 이 학용품들은 1년만 사용되고 버려집니다. 어른들은 아주 쉽게 매장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사고, 다음 해에 또 사죠. 매년 준비해야 할 학용품이 같다면 1학년 때부터 교육기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학용품을 사도록 학교에서 유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클리어파일의 경우 튼튼한 종이로 끼워 쓸 수 있거나 금속으로 된 제품도 있거든요. 저 또한 아이의 유치원 3년 내내 준비해야 했던 싸인펜과 크레파스, 색연필 등이 모두 플라스틱 재질이라 마음이 몹시 불편했던 기억이 있어 매우 공감했습니다.

그녀는 본인의 제로웨이스트 홈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환경보호'라는 키워드에 노출되었고, 이 시대에 '환경'은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렸죠. 비 존슨은 본인의 강연에서 '환경'이라는 단어는 두 번 정도밖에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요. 가족과의 행복, 건강함, 삶의 질 상승 등의 측면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이야기 했기 때문에 더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어쩜 이렇게 멋있을 수 있을까요. 하나의 확고한 실천을 만들기 위해서 수십번, 수백번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그녀의 노고를 존경합니다. 그간의 실천들을 5R과 라이프스타일 측면에서 요약 설명할 수 있다는 건 반복적인 경험과 엄청난 시행착오, 강한 의지가 아니면 실현되기 힘들었을거에요.

이렇게 본 행사가 끝나고 1층 사인회 현장으로 갑니다. 제가 좀 눈치가 빠른 편이어서 이 곳에서 하겠거니 하고 서있는데 어느새 그게 줄이 되어버렸어요. 어떨결에 가장 처음으로 비 존슨의 사인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도 비 존슨의 멋짐이 부각되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주최측은 여느 사인회와 마찬가지로 싸인용 네임펜을 준비해 놓았어요. 비 존슨은 자신이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재사용 가능한 펜을 꺼내며 그 일회용 펜을 사양했지요.

전 책 두 권을 준비했어요. 하나는 개인 소장용으로, 하나는 아파트 내 도서관에 기증할 마음에서였죠. 각 책에 'to' 다음 뭐라 적어달라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두 권의 책을 내미는 순간 비 존슨은 이렇게 말했어요. "전 제 책이 보관용이 되길 원하지 않고 함께 나누길 바란다. 그래서 개인 이름을 사인에 넣지 않는다". 제가 참 생각이 짧았던 것을 느꼈죠. 그녀는 제 이름 대신에 함께 나누자는 메시지를 적어줬어요. 강연 끝나고까지 절 감동시키네요.

그녀는 쓰레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실천하였고, 그렇게 비우는 동안 행복을 얻었죠. 이 강연은 제로웨이스트라는 행보에 발을 들인 지 이제 막 1년이 되어가는 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유연성'이란 키워드는 해법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조금씩 지쳐가는 저에게 위로를 주었고, '나눔'이란 키워드는 앞으로 실천해가는 참 좋은 아이디어가 되었죠.

고마워요, 비 존슨! 살아있는 영감이 되어주어서.

오랫동안 블로그를 쉬었습니다. 아이들 방학 핑계로 바빠졌다가, 몇 가지 일 벌린 것들이 생겨서 정신 없다가, 문득 고개들어 보니 꽃이 피네요. 그렇다고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고 대안을 찾는 일은 소홀히 한 건 아니에요.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는 것은 트위터나 인스타그램과 달리 시간과 정성이 몇 배는 들기에 그런 짬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죠. 이제 생활이 조금 안정되어 밀린 포스트들을 하나씩 풀어보고자 합니다.

그 사이 블로그를 오픈한 지 일년이 지났어요. 일년을 실천하면서 든 생각 중 하나는, 누구나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착하고 좋은 상품을 많이 알리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는 것이었죠. 유럽, 영국, 미국, 호주, 대만 등 우리보다 제로웨이스트나 플라스틱 대안에 대한 고민이 많은 나라들에서는 대안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에 늦게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시작하더라도 보다 쉽게 대안을 찾을 수 있어요. 구매가 이루어져야 시장이 만들어지고, 시장이 활성화되어야 실천가들의 선택폭이 넓어지고, 그래야 정말 일상 생활에서 Non Plastic 제품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형마트에서 면생리대를 이제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몇년 후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Non Plastic 제품들이 마트에 가득하길 바라봅니다.   

그래서 올해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이제 막 제로웨이스트 또는 No More Plastic 실천을 시작하는 분들을 위해 좋은 제품들을 사용해보고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어요. 제 경우, No More Plastic 실천을 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썼던 플라스틱 물건들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대안체들로 한순간에 채워버리는 선택을 한 것도 아니고, 아무리 플라스틱이라 해도 그 역할과 소명을 다한 후 대체제를 신중하게 고르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한번에 드리지는 못합니다. 구매하기 전에 1) 진짜 필요한 건지, 2) 사지 않고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지, 3) 만들어 쓸 수는 없는 지 따진 후에 구매한다는 제 나름의 기준이 있기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보다는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제품들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 게 제 마음입니다. 신중하고 느리게 선택한 만큼 솔직하고 자세하게 그 후기를 전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은 이제야 올리지만... 4월에 소개드리려 했던 제품은 아임낫띵의 황마로 만든 낙엽 수세미입니다.

앞 서 두번의 포스트를 통해 일명 수세미실이라 불리는 아크릴사, 폴리에스테르사로 수세미를 뜨는 것이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그 대안으로 전 수세미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어요. 일년 전 산 마끈으로 만든 수세미는 지인들 선물로 대부분 나가고 제 건 두 벌반 남겼는데, 마지막 마 수세미도 끈이 끊어져 버리게 됐고, 시어머님 친구분이 주신 수세미를 대신 사용하고 있던 차였죠.

이 제품을 처음 알게된 것은 인스타그램에서였어요. 어느날 낙엽 모양의 수세미를 보게 됐는데, 그 브랜드 이름이 '아임낫띵'이래요. 이 센치한 이름이 낙엽 수세미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거에요. 정말로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낙엽 가득한 가을 어느 날이 떠올랐죠. 마침 황마 수세미도 없고 그 패턴도 궁금하여 낙엽수세미 DIY 패키지를 구매하게 됐어요.

판매처가 저희 집에서 두 정거장 거리이기에 배송비도 아끼고 탄소발자국도 줄일 겸 직접 받겠다했는데, 다른 일정으로 차 끌고 나왔다가 도착지점에서 주차를 못해 헤매게 돼 오히려 미세먼지발생 주범자가 되었다는.

택배 배송할 때는 종이상자에 담아주시는데, 직접 온 전 종이봉투에 담아주셨어요. 포장이 군더더기 없지요. 포장 포인트인 유칼립투스잎은 직접 키운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받아온 즉시 낙엽 수세미 하나를 완성합니다. 보통 마끈 한 타래로 열 개 정도 뜬다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코바늘이 굵었던 건지 전 15개의 수세미를 떴어요. 마끈이 거칠다보니 좀 손이 아픈데, 마끈 한 타래 다 쓰는데 이틀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동봉된 가이드 외에도 동영상을 공유해 주셔서 코바늘 초보자도 쉽게 뜰 수 있을 거에요. 

15개 중 잘 만든 것 같은 8개는 종이봉투를 재활용해 네임택을 만들어 달고 친구들에게 선물했어요. 그리고 남은 7개는 두고두고 쓰기 위해 잘 쟁여두었죠.

이제 설겆이 할 시간. 처음 이 수세미를 사용할 때는 주방비누를 썼기 때문에 비누를 비벼 거품을 내 사용했어요. 거품이 잘 생깁니다. 면사 수세미보다 지속력도 길구요. 그래서 예전에는 마수세미를 헹굼용으로 썼는데 이 때부터 거품용으로 사용하게 됐어요. 주방비누에서 소프넛으로 갈아탄 후에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데 설겆이 결과에 꽤 만족스럽습니다.

뜨개질한 수세미는 내구성이 좋아요. 제가 헹굼용으로 떴던 마수세미보다 조직이 촘촘해서 잘 끊어지지도 않습니다. 첫 수세미를 3월 말부터 사용했는데 아직까지 튼튼하게 잘 사용하고 있어요. 

촘촘한 만큼 두께감이 있어서 잘 마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마소재는 건조력도 좋네요.  제가 뜬 면사수세미가 더 얇은데 마수세미가 훨씬 더 빨리 마릅니다.

요즘 전, 소프넛 우린 물에 이 마수세미를 적셔 설겆이를 하고 면사 수세미로 헹굽니다. 설겆이 후에는 꼭 짜서 걸어두고, 3주에 한번 꼴로 삶아주고 있어요. 색상 때문인지, 소재 때문인지 면사 수세미보다도 때가 덜 끼고 잘 지워지는 것 같습니다.  

남은 수세미는 올 일년 풍족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 낙엽수세미가 떨어질 때쯤, 마끈 한 타래를 사서 그 후 일년을 사용할 낙엽수세미를 뜨고 있겠죠. 이렇게 좋은 대안을 가지고 있고, 그 방법을 안다는 건 참 마음을 든든하게 만듭니다.

참고로 말씀드릴 것은, 만약 직접 낙엽수세미를 뜨신다면 고리부분을 본인이 갖고 있는 건조 고리 크기에 맞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거에요. 저희 집 건조 고리는 가로 폭이 0.3cm 정도 되는데, 도안대로 떴더니 걸 때 조금 불편하더라구요. 고리 구멍이 작다고 생각되시면 서너코 정도 더 떠서 고리를 만들길 추천드려요. 뜨개에 자신 없는 분들은 사이트에서 완제품도 구매할 수 있으니 참고 바라구요. 구매좌표는 바로 여기에요. >>>>>> http://imnothing.kr/

센치한 황마 수세미로 착한 설겆이하세요~ :)

 

10월이 지난지 벌써 6일이나 지났어요. 이 포스트를 할로윈 전에 꼭 써야지라고 마음먹었는데 너무나 바쁜 10월이어서 이제서야 올립니다. 저희 집은 10월이 일년 중 가장 바빠요. 가족들의 생일들이 모여있기도 하고, 아이들 원 행사도 이 달에 몰려 있어서 그래요. 그중에서도 아이들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건 할로윈입니다. 다른나라 전통에 왜 난리냐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요, 멋진 코스튬과 무서운 괴물 이야기, 달콤한 Treat or Trick 장난은 아이들에게 분명 매력적인 놀이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도 할로윈 모임이 두 번 있었어요. 하루는 키즈카페를 빌려 친구들과 파티를 했고 하루는 저희 집에서 할로윈 분위기로 꾸며 파티를 했죠. 의상은 2만원선에서 아이가 원하는 드레스를 인터넷으로 사줬어요. 머리띠와 요술봉까지 한 세트인 멋진 마녀 복장인데 가격까지 저렴하니 참 만족 스러웠죠. 하지만 이 의상은 말그대로 코스튬인걸요. 두 날 외에, 집에서 공주 놀이할 때를 제외하곤 거의 입지 않아요. 소재는 폴리에스터 100%입니다.

 

10월이 다가오면서 큰 아이는 본능적으로 할로윈의 달이 다가왔다는 걸 알고는 요즘 푹 빠져 있는 애니메이션 <리나는 뱀파이어>의 리나가 되고 싶다 했죠. 구글링을 해봐도 국내에는 리나 의상이 없어요. 해외직구로 구매할 수 있으나 대부분 폴리에스터 100%의 코스튬뿐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딸에게 '만들어줄게'라는 약속을 하고 말았죠... 머릿속에서만은 의상이 뚝딱하고 나왔으니까요. 

10월 첫날부터 엄청난 구글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 처음 찜해놓은 면 재질의 무지 핫핑크 반팔티는 계절이 바뀌어 절판됐죠. 특히 원피스는 마음에 드는 것 찾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리나는 반팔을 입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겨울이 곧 올 것처럼 추웠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천 사다가 재단해 만들어주고 싶으나 아직 제 미싱 솜씨가 그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답답했죠. 그러다가 자주 들르는 아동복사이트에 신상품이 올라왔는데 심플한 검정 원피스였어요. 소재는 코튼 60%, 폴리 40%. 한참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구글링이 너무나 힘들었던 탓에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절판된 핫핑크 분홍 면 반팔티가 눈에 아른거리는 중에, 마침 들른 유니클로에서 5천원에 세일하는 가오리형태의 분홍티를 찾았어요. 아이의 요구대로 뱀파이어의 푸른 피부를 상징하는 푸른색 히트택도 구매했죠. 하지만 집에 돌아와 소재를 확인해보니 폴리에스터, 레이온, 폴리우레탄의 조합이네요. 기능성 옷들일수록 가격은 더 비싸면서 소재는 왜 죄다 플라스틱일까요. 가격이 합리적인 면 소재 옷 찾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대신 집에서 만드는 소품들은 플라스틱 소재가 아닌 걸로 해주자 마음먹었죠. 먼저 원피스에 넣는 거미줄 모양은 면사로 재봉틀 작업해 완성했구요. 제 오랜 검은색 면 나시티를 잘라 목걸이를 만들고 오래된 머리띠의 살에 면과 울이 혼용된 실로 박쥐 모양 머리띠를 만들었죠. 박쥐 틀을 고정시키기 위해 낡은 끈에 포함된 철사를 이용했어요. 머리띠의 분홍 머리끈 부분은 면으로 된 자수실을 여러개 겹쳐 코바느질했습니다. 리나의 파란 장갑은 면사로 된 어린이용 목장갑을 사서 손가락 부분을 자르고 손바느질하여 만들었구요. 그 외 바지와 양말, 부츠는 기존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사용했어요.

완성하면 요런 모습이 됩니다. 삐뚤빼뚤 솜씨가 부끄럽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리나는 뱀파이어> 의상이 만들어졌습니다.

딸 아이는 이 옷을 입고 서울랜드 할로윈 페스티벌을 누볐고, 두 번의 친구들과의 할로윈 파티도 참석했죠. 그리고 할머니 생신날 가족 모임에서도, 동생 어린이집 체육대회에서도,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유치원 갈 때도 입고 가요.

 

100% 친환경소재로 할로윈 코스튬을 만드는 것은 비록 실패했지만, 한번 버리고 말 코스튬이 아닌 생활복을 만들어 쓰레기를 줄이고, 머리띠나 목걸이 등 소품은 기존 낡은 것들을 재사용해 자원을 아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딸 아이가 만족하고 좋아하해주니 그것만큼 보람있는 것은 또 없네요.

지난해와 달리 올해 할로윈 행사를 치루며 느끼는 풍경은 사뭇 달랐어요. 제 친구들도 몇 번의 할로윈을 치루면서 할로윈 때문에 구매하는 코스튬이 너무 약하고 불편하고 실용성이 낮다는 데 공감하고 있었어요. 제 친구들은 이왕 사는 옷, 일상에서도 병행해 입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꼼꼼히 따지더라구요. 활동성이 좋고 내구성이 좋은 걸로. 그리고 지난해 코스튬을 잘 활용해 다른 느낌의 의상으로 재사용하기도 하구요.

아래는 그런 친구들 중 하나가 아이를 위해 만들어 준 마녀 빗자루에요. 검정색 티셔츠로 마대 자루를 감고 여러 셔츠를 길게 잘라 빗자루처럼 묶었는데 한쪽의 별 포인트까지 낡은 옷으로 모양냈어요. 이렇게 멋진 마녀 지팡이 보신 적 있나요? 이 친구가 손재주가 뛰어나긴한데, 마트 매대에서 몇 천원에 살 수 있는 플라스틱 빗자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급스럽고 멋진 할로윈 소품이었어요. 사진에는 없지만 이 친구의 아이는 검정색 마녀 복장을 하고 왔는데, 기존 검정색 밸리 의상을 이용해 기성복으로 멋진 마녀 복장을 완성했더라구요.

할로윈 전통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10월이 되면 정말 많은 폴리에스터 코스튬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에 쏟아집니다. 한번 입고 버린다고 생각하니 플라스틱 섬유 쓰레기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지구를 위해 옷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1. 좋은 소재의 옷을 구매하고 2. 오래 아껴 입고 3.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솜씨 없는 저도 조금이나마 실천하기 위해 코스튬을 만들어보는 시도를 했어요. 이미 지난 할로윈이지만 내년엔 함께 플라스틱 코스튬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데 동참해보는 건 어떨까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 마음 먹고, 한동안 집에 있는 모든 플라스틱을 버리고 싶은 충동에 빠졌죠. 제 쓰임을 다하지 못한 플라스틱을 처분하는 것은 또 다른 쓰레기를 양산하는 것 뿐이다라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한동안은 정말 모든 플라스틱이 괴물이라 생각될 정도로 멀리하고 싶었어요. 가장 눈에 밟혔던 건 총천연색의 아이들 장난감. 제가 심사숙고하여 골랐던 것들이기도 하고 선물로 받아 쉽게 보내지 못하는 장난감들 모두 플라스틱 소재였어요. 이별하고 싶어도 손에서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애들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갈등 속에서 꼭 처분해야할 플라스틱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식기들이었어요. 장난감들과 달리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만은 꼭 처분하겠다 마음 먹었고 실행했죠. 우리집의 모든 플라스틱 식기들을 봉투에 담아 보니 보시다시피 한가득이었어요. 나눔접시, 시리얼그릇, 물통, 숟가락, 포크 등인데 이렇게나 많습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제품들도 꽤 있었는데 식기들은 대부분 멜라닌 수지, 물컵과 물병은 대부분 PP였죠. 아기용 숟가락 몇 개는 실리콘 제품도 있었구요. 그 중 이케아에서 산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접시들은 후에 미술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남겨두고, 물컵 네 개는 양치용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이와 함께 부엌에서 플라스틱인 것들을 추려보니 가장 먼저 손에 잡힌 건 이 인덱스 도마였어요. 그리고 밥솥과 함께 사은품으로 받은 플라스틱 주걱 두개. 두 물건 모두 잔 상처들이 많았는데, 그 플라스틱 가루들이 우리들 입속에 들어왔을 거라 생각하면 꺼림직스럽습니다. 도마는 나무도마로, 주걱도 옻칠이 된 나무 주걱으로 바꿨습니다.

이렇게 한 바탕 수선을 부린 후 창고 한 켠에 두었어요. 남편은 플라스틱이라 해도 쓰임이 있을 지 모르니 기분 따라 버리면 후회할거라 경고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두달이 지난 것 같아요. 다행히 플라스틱 식기들이 없어져도 대안은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기존 엄마와 아빠를 위한 브런치용 나눔접시는 아이들의 주 식사용 식기로 사용하게 됐구요. 시리얼 그릇과 파스타 등 일품요리를 담는 그릇도 사기 그릇이 있었구요. 사진에는 없지만 비록 플라스틱 뚜껑이나 스테인레스 도시락통과 식기도 있었구요. 

다만 컵은 에스프레소잔 크기의 사기컵을 새로 구매하려다가 아직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옻칠한 고무나무컵을 구매했어요. 평소에는 스테인레스 수저를 사용하나 요거트와 같이 스텐 숟가락이 적합하지 않은 음식을 먹을 때를 대비해 올리브나무 숟가락도 구매했습니다. 컵은 인터넷, 숟가락은 다이소에서 구매했어요.

다이소 에피소드를 하나 말씀 드리자면, 저 숟가락은 다른 나무 숟가락을 구매한 후 반품하고 더 큰 매장에서 다시 찾아 구매한 거에요. 그 전에 구매한 건 올리브나무 재질이었는데 겉이 맨들맨들하니 티스푼으로 참 근사했죠. 가격도 천원으로 매우 착했구요. 하지만 집에 와서 꼼꼼이 살펴보니 재질에 "아카시아 나무(폴리우레탄 칠)"이라고 적혀 있는 거에요.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니스칠을 한 거였죠. 플라스틱이 싫어서 나무 숟가락을 구매했는데, 그 숟가락에 플라스틱 칠이 되어 있으니 많이 당황할 수밖에요. 혹시 저와 같은 이유로 나무 소재 식기를 찾는다면 재질을 꼼꼼히 살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천연 방수 처리인 옻칠도 방법과 도료에 따라 퀄리티가 다르더라구요. 하물며 옻칠과 니스칠은 가격면에서, 식품 적합성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산 것은 아래 제품입니다. 받침 종이에 비닐코팅도 없고, 그 흔한 플라스틱껍데기 철끈 대신 마끈으로 상품을 묶은 착한 포장이 인상적이죠. 튀니지 원목 핸드메이드 제품이라 모양과 크기가 조금씩 다르고 투박한 느낌이 납니다. 이런 원목 제품은 방수 처리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사용한 후 세척 후 바로 말려야해요. 그리고 식용유로 기름칠을 수시로 해주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요. 비록 플라스틱 제품이 선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다이소이지만, 나무식기 등의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아래와 같이 플라스틱 프리, 친환경적인 제품들도 보석같이 발견할 수 있어, 오히려 대형 마트보다 낫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다이소가 트렌드에 빠른 거겠죠, 소비자인 우리가 더 많이 이런 제품들을 찾으면 더 많은 착한 제품들을 매장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식기와 더불어 수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아이들의 수저들은 대부분 손잡이가 플라스틱이었어요. 그립감이 좋기도 하고 아이들을 혹하게 하는 캐릭터 그림을 넣는 최적의 방법이기 때문이겠죠. 마음 같아서는 바디 전체가 스테인레스로 된 수저들만 남기고 처분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면 아마 저 수저통에 아이들용은 단 두 벌밖에 남지 않았을 거에요. 아이들의 성화와 입에 직접적으로 들어가지는 않기 때문에 이것까지 버린다면 플라스틱 거부가 아니라 혐오인 것 같아 당분간 놔두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저 숟가락들의 역할이 끝날 때 재질별로 잘 분리수거하여 보내려구요. 이렇게 한바탕 정리해보니 수저통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게, 알록달록 식기들을 버리면서 아이들이 찾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이들은 의외로 잘 적응합니다. 오히려 새로 생긴 나무 컵과 숟가락에 호기심을 보이고 색상 가지고 본인 것, 동생 것을 나누고 실랑이하지요. 캐릭터에 집착하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엄마였던 것 같아요. 사기 식기도, 나무 컵도 깨뜨리지 않고 잘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자라준 아이들이 참 고맙습니다. 더불어 두 아이 모두 더이상 빨대 없이도 음료를 흘리며 먹지 않을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석달전까지만 해도 저희집은 일회용 물걸레 청소포를 사용했습니다. 보통은 한장씩 뽑아쓰는 형태를 사용했는데, 가장 최근에 사용했던 것은 의도치 않았지만 위와 같이 한장씩 뜯어쓰는 형태였어요. 플라스틱의 남발에 대해 문제의식이 생긴 후 이 일회용 청소포는 제게 죄책감이 되었습니다. 내 집안 깨끗이 한다고 플라스틱 섬유가 포함된 부직포 쓰레기를 매번 한두개씩 지구에 쏟아내는 아이러니함을 느꼈죠. 하나씩 뽑아쓸 때마다 죄책감이 하나씩 들춰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비닐 개별 포장이 된 청소포를 뜯을 때는 오죽했을까요. 있는 것을 안쓰자니 자원낭비고 쓰자니 견딜 수 없는 마음의 불편함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국 타협안은 마음에 드는 청소용 걸레 대안을 마련할때까지만 사용하는 거였죠.

청소용 걸레는 말그대로 걸레이기때문에, 걸레를 위해 돈을 쓴다는 게 내키지가 않았어요. 이것도 돌이켜보니 아이러니인데, 일회용 청소포 사는 데는 돈을 쓰면서 막상 걸레를 마련하는데는 아까움을 느낀다니 참 이상하죠. 제가 정한 청소용 걸레 대안의 기준은 세 가지. "하나, 면 소재여야 한다. 둘,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한다. 셋, 비용을 최소화한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중에서 몇 천원씩 파는 면 소재의 청소용 면포들은 포기했어요. 그것들을 사기위한 비용 발생도 아쉬웠지만, 대부분의 면포들이 비닐포장되어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아이들의 철 지난 옷들이었어요. 특히 작은 아이는 여러 곳에서 물려받아 최종 종착지가 된 티셔츠들이 꽤 되거든요. 크기가 작아진 것도 그렇지만, 워낙 활동적이어서 물감이며 싸인펜이며 초콜릿 자국, 케첩 자국이며 물려입기도 재사용하기도 애매한 것들이 많았죠. 그래서 이걸로 청소용 걸레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렴풋이 중학교 시절 실습했던대로 네 귀퉁이를 막는 걸레 형태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시행착오 끝에 제게 맞는 밀대용 청소 걸레를 만드는 법을 알게되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면 100%의 아이 웃도리를 잘 편 후 겨드랑이 밑을 일자로 절단합니다. 긴팔, 반팔 관계 없어요. 티셔츠 말고 내복도 좋습니다. 주머니나 다른 소재 무늬가 있어도 괜찮아요. 그런 후 절단한 부분의 1센티 아래 정도를 일자로 박음질해줍니다. 저는 집에 재봉틀이 있어서 한 번 일자박기로 드르륵 박아주면 되는데, 손바느질도 괜찮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요.

 

포인트는 그렇게 박음질한 후 박음질 안된 다른 쪽에 손을 넣어 뒤집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좌우 양쪽은 오버로크되거나 단 처리가 되어있고 한쪽은 막혀진 형태가 돼요. 거추장스러운 태그는 가위로 바짝 잘라주면 됩니다. 이렇게 청소용 걸레가 완성됐어요. 뒤집는 이유는 오랜 사용으로 낡아진 겉면보다 안쪽면의 상태가 양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주머니나 무늬 등의 영향을 받지 않아 사용 시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 날 한 시간도 안되어 철 지난 아이 옷으로 다섯개의 걸레 면포를 만들었어요.  

  

완성된 면포는 물을 묻힌 후 꼭 짜서 기존 사용했던 밀대에 끼워넣으면 됩니다. 3M 표준형 밀대에 90~100사이즈 아이옷이 꼭 맞네요. 저는 이렇게 끼운 상태로 밀대질을 하는데, 걸레가 아래로 밀려들어와 뽀독거리는 소리가 불편하다면 열린 부분을 집게로 꽂아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집안을 한 바퀴 다 돌고 온 걸레의 모습이에요. 이후 상하만 바꿔 밀대에 껴서 또 사용해도 되고 밀대에서 뺀 후 반으로 접어 손걸레로 사용할 수도 있어요. 걸레이다 보니 사용 후에는 먼지를 털어내고 애벌빨래한 후 다른 면 제품들과 같이 세탁기에 돌리면 됩니다. 너무 더럽다 싶을 때에는 과탄산소다 한 스푼 넣고 푹 삶아주면 깨끗해집니다. 

별거 아닌 아이디어지만, 분리수거장 헌옷수거함에 내놓기도 민망한 옷들을 재활용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일회용 청소포와 작별할 수 있게 되어서 또 좋구요. 잘려진 짜투리 부분은, 제 경우 따로 모았다가 아이의 물감 팔레트를 닦거나 창틀을 닦을 때 사용합니다. 버려짐이 없어 참 좋은 재활용아이디어죠. :)

지난 목요일에는 코엑스 C홀에서 개최된 <2018 대한민국 친환경대전(Eco-Expo Korea 2018)>에 다녀왔어요. 친환경대전은 친환경 착한 소비생활 문화 확산을 통한 친환경 산업 및 시장 활성화를 위한 비즈니스의 장이라는 취지로 2005년부터 환경부가 주최하고, 한국환경산업기술원가 주관하는 행사입니다. 올해에는 "보고, 느끼고, 즐기는 '착한소비' 페스티벌"이란 주제로 개최됐는데요, '(보고)지속가능한 환경, 친환경 생활의 지혜', '(느끼고)안전하고 똑똑한 소비', '(즐기는)몸으로 보고 느끼고 즐기는 친환경 생활', '지속가능한 디자인페어'와 같이 4가지 섹션으로 부스가 나뉘어 구성되었습니다.  

출처 : 2018 대한민국 친환경대전 홈페이지(바로가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환경부가 운영하는 '미세먼지 바로알기' 부스를 만나게 되는데요. 미세먼지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집안의 미세먼지를 게임으로 잡아보는 놀이도 하고, 공기정화 천연이끼인 스칸디아모스로 액자도 만들어보는 체험을 한 후 개인의 다짐을 적은 스티커를 붙이는 구성으로 되어있어요. 

 

 

 

아래 왼쪽은 집안의 미세먼지 잡기 게임을 잘해서 받은 키트에요. 미세먼지 많은 날 유용한 물건들이 담겨있는데 비타민C는 먼저 발견한 아이들이 야금야금. 공기정화 이끼 액자는 다행히 모양 그대로 집에 와 무심히 책장 한 칸에 자리잡았지요.

 

시간을 내어 전체 부스를 나름 꼼꼼이 살펴보며 돌아다녔다고 생각되지만, 기업부스에서는 제 관심사에 들만한 내용이 많이 없었어요. CO2를 절감한 가전제품, 친환경 페인트 등 어떤 측면에서는 과연 친환경적인가 의구심이 되는 제품 홍보부스도 꽤 있었거든요. PVC 홍보 부스가 그랬어요. 폴리염화비닐이 다양한 영역에 꼭 필요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세계가 플라스틱 때문에 질식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PVC 홍보부스가 친환경영역에 들어와 있다는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눈에 띄는 소규모 업체들도 많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잡화 브랜드인 리틀파머스는 자체 제작한 비건 레더(Vegan Leather) 제품을 선보였구요, 최근에 옻칠에 관심이 많아 알게된 '구채옻칠' 브랜드도 참가했더라구요. 그리고 등고선 모양으로 종이모형을 만든 '콘타모'라는 브랜드는 약 3센치 높이의 종이모형 만들기 제품도 선보였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페이퍼 가든'이라는 브랜드는 폐지를 모아 엽서나 카드를 만드는데 카드에 물을 주면 카드 속에 있는 씨앗이 발아하는 수제카드를 선보였어요. 수제 카드라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지만 특별한 날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갑이 열릴 뻔한 순간이 많았지만 과소비라 생각하여 참았는데, 비즈랩 DIY세트는 구매할 수 밖에 없었어요. '손끋비' 이름 참 예쁘지 않나요. 제가 알고 있는 국내 천연밀랍랩은 두 곳인데, 이 날 새로운 브랜드를 알게 되었어요. 사장님말씀으로는 부산에서 지난해부터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아직 홍보가 덜되었다고 그러시더라구요. 대부분의 브랜드가 완제품을 판매하는데 아이들과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키트를 만들었다는 것이 인상깊어 지갑을 열고 말았네요. 집에 비즈랩 만드려고 사놓은 밀랍이 있음에도 불구하구요. :)

  

친환경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게 느껴진 기업 부스들과 달리 '(즐기는)몸으로 보고 느끼고 즐기는 친환경 생활' 영역은 최근 친환경 놀이와 체험의 트렌드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뜻깊었다고 생각됐어요. 큰 아이도 같이 왔더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자주 들더라구요. 흙 물감을 이용해 스텐실 기법으로 액자를 만드는 체험부스도 있었구요.

  

두꺼운 코팅지의 낡은 책을 버리지 않고 팝업북으로 만들어 보는 체험도 있었어요. 책의 주요 그림을 오려내고 짜투리 종이로 입체적인 효과를 만드는데, 이야기를 한 장의 스토리로 압축해낸다는 점에서 교육적인 효과도 있고 나만의 그림책을 만든다는 점에서 멋진 활동이라 생각되었어요. 집에 있는 책 가운데 뜯어져 곧 버릴 것 같은 책들을 가지고 아이와 작업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업사이클링이 대세이긴한가봅니다. 많은 체험부스가 낡은 물건들을 새롭게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었는데요, '같이공방'은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라는 컨셉으로 '집에서 보물 찾기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특히 캔뚜껑을 이용해 머리핀을 만드는 것은 집에서 큰 아이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는 업사이클 환경교구인 '업사이클 아트박스'를 개발해 선보였는데요.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카드 목걸이, 코팅종이인 영화 포스터로 만든 연필, 유리조각으로 만든 바다유리 목걸이, 유리공병으로 만든 무드 조명 등을 만날 수 있었고 일부는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었어요. 이 패키지의 포장재는 매쉬원단이어서 부스 관계자분께 물어보니 광고판의 뒷면은 매쉬소재의 플라스틱을 사용하는데 이를 수거해서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빨대를 재활용해 천장에 거는 화분을 만드는 체험도 있었고, 커피원두를 담는 자루를 업사이클한 가방, 플라스틱을 업사이클한 줄넘기 등 다양한 제품들과 체험기회를 접할 수 있었어요.

 

 

커피 찌꺼기를 점토로 만들어 판매하는 업체에서는 직접 점토로 동물들을 만들어보는 체험 부스를 운영했어요. 하얀점토가 일반적인 것을 감안하면 검정 점토는 참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저도 직접 만들어봤는데요, 북극곰 틀에 점토를 찍은 후 채색을 했는데 북극곰은 하얀색이라는 틀을 못버리고 가슴에 반달 무늬 넣어 반달곰으로 완성했답니다.

 

 

'달촌 허니비' 부스에서는 밀랍초 만드는 체험을 했는데요. 긴 밀랍에 초심을 놓은 후 둘둘 말면 완성되는 초 간단 방법인데 포인트 장식으로 벌 장식을 꽂아줬어요. 이 부스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체험을 도와주는 도우미 학생들이 모두 청소년들이었기 때문이에요. 가장 열정적이고 신나하며 체험객을 모집하고 설명하는 모습에서 에너지를 얻고 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몇몇 부스에서는 환경과 관련한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가분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초록콩깍지'의 김성현 작가님이 그 중 한 분이셨어요. 모아이 조각상을 모티브로 작업하시는데 그 분의 모아이 작품 엽서 뒤에는 이런 글귀가 써 있어요. "우리는 다양한 흔적을 남깁니다. 우리가 선조들의 흔적과 함께하듯 후손들도 우리가 남긴 흔적과 함께할 것입니다. 우리가 남긴 흔적 중엔 쓰레기도 있습니다. 우리가 떠난 뒤에도 오랜시간 그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둘러앉아 두런두런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종이 의자도 알고보니 핵 상징 방사능 표식이었어요. 과거에는 핵맹 작가모임으로 전시도 하셨다고 해요. 작품의 모티브에 대해,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음에 드는 작품 사진 엽서도 얻고 브로셔도 얻었습니다.

 

'친환경생활지원센터'에서는 우리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환경 표시에 대해 설명해주셨어요. 이날 배운 것 중 하나는 바로 저탄소인증제도인데요. 아래와 같은 표시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보신적 있다 하시겠지만 가운데 O모양 열매에 화살표가 들어있는 제품은 흔하지 않다고 해요. '탄소성적표지 제도'는 2009년부터 실시하는 제도인데, 제품의 생산부터 폐기 과정까지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제품에 표기하고 저탄소 배출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다고 해요. 총 3단계로 인증이 이루어지는데, 1단계는 탄소배출량 인증이라고 제품의 전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 양으로 환산하여 제품을 인증하는 첫 단계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 제품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이렇다라고 공개함으로써 앞으로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활동에 동참함을 선언하는 거래요. 2단계는 배출량 인증을 받은 제품 가운데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동종제품 평균보다 적은 제품에 부여한다고 해요. 즉 이 표시를 단 제품이 진정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데 노력하고 기여하는 제품인 것이죠. 3단계는 탄소중립제품 인증인데, 저탄소제품 인증을 받은 제품 가운데 탄소 배출량을 탄소배출권 구매 또는 기타 감축활동을 통해 상쇄함으로써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든 제품에 부여하는 인증이라고 합니다. 아직까지 3단계에 다달은 제품은 없다고 알고 있어요. 이 날 전시된 제품 중에서 2단계 표시를 부착한 제품은 단 하나였구요.  

마지막으로 제가 고대했던 체험은 바로 '면생리대 만들기'였어요. 저는 생리컵을 사용하고 있지만 혈량이 많은 날에는 일회용생리대를 병행해 사용하고 있거든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일회용생리대를 모두 소진하면 제가 만든 면생리대로 바꿀 계획이에요. 그래서 여러 면생리대 만드는 법을 알아보고 있는데 이 곳에서도 마침 체험 행사가 있었어요. 이 곳에서 배운 방법은 분리형 생리대로 속에 가재손수건이나 소창을 덧대어 사용하는 형태였어요. 융천을 사용해보니 보드라운 느낌이 참 좋더라구요. 미리 일차 바느질이 된 것을 완성하는 것인데 그래도 30분정도 들어 생리대를 완성했어요. 패턴은 피자매연대 홈페이지에서 받을 수 있어요.(바로가기 >> http://bloodsisters.net/)

 

 

이렇게 한 바탕 돌고 나면 아래와 같이 스탬프도 받고 스탬프 완성 선물도 받습니다. 꼼꼼한 부스 도우미분들덕에 공짜 스탬프는 없었어요. 필히 체험 또는 가이드를 들어야지만 받을 수 있는 스탬프에요. 하지만 긴 노력 끝에 받은 선물은 플라스틱 재질 My Bottle 물병... :( 저희 집에 무려 5개나 있어서 베이킹소다 담는 통으로 사용하고 있다구요. 신기하게도 제게는 불필요한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일 수 있잖아요. 밀랍초 체험하는 동안 어느 분이 어디서 받았냐고 물으시길래 선물로 드리고 왔어요. 그 분은 저보다 더 유용하게 사용하실거라 믿습니다.

아래는 사전등록자 선착순 100명에게 준 선물이에요. 나무섬유로 만든 손수건인데 종이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포장은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아래는 YWCA의 에너지절약 체크리스트를 완성하면서 받은 손수건 선물. 요즘 저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죠. 플라스틱 포장이 안타깝지만 손수건 선물은 반갑습니다. ㅎㅎ


이렇게 약 3시간의 방문이 끝났어요. 캐릭터페어나 유아교육전 등 대형 행사를 일년에 두어번 다녀서, 그에 비교한다면 참 작은 규모지만, '친환경'의 큰 틀 안에서 환경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지 체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특히 올해 행사는 비닐봉투 사용을 하지 않기로 해 남발되는 포장지가 없었구요. 곳곳에 둔 친환경 인증 받은 정수기 옆에는 그 흔한 종이컵도 없었죠. 행사장의 크기가 말해주듯이 친환경 산업이 아직 크지 않아요. 정말 좋은 취지와 아이디어를 가진 업체들도 영세하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아니면 쉽게 대중들을 만나기 어렵죠. 가끔 아이러니한 제품이나 부스를 만날 수는 있어요. 친환경 인증을 받은 종이 연필인데 포장은 플라스틱인... 피드백이 필요해요. 구매가 동반된 진실된 피드백. 좋은 취지의 작은 기업들이 성장하고 그 기업들이 많아져야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도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많이 접하고 배운 행사였고, 다양한 곳에서 묵묵히 지구와 환경을 위해 한번 더 생각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동질감을 느낀 자리였어요. 내년도 기대됩니다.


제가 사는 성남지역은 평범한 소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인 동네입니다. 강남과 분당, 판교와 위례 사이에 끼어 어느덧 오래된 동네, 또는 구시가지라고 불리우는 곳이죠. 신식 아파트로 변모하는 다른 동네와 달리 아직도 다세대 가구가 골목을 마주보는 풍경이 익숙한 동네이기도 합니다. 주변의 나름 부자 동네들 사이에 있어 상대적으로 문화의 혜택이 적은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시 차원의 지원도 늘고 해서 동네 도서관도 많아지고 복지시설도 늘고 있는 추세인데, 태평동에 '에코벨리커튼'이란 멋진 문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건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태평동 문화예술공간인 '오픈스페이스 블록스'가 기획/추진한 이 프로젝트는 좁은 골목 옥상을 가로지른 그늘막 아래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골바람에 열기를 식히는 모습을 보며 태평동 골목을 그늘막이 있는 '생활 속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 시켜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고 해요. 2017년에 처음 진행됐는데, 첫 회에는 80여 일간 100여개의 장막을 설치했다고 해요. 올해에는 규모를 확대하여 300개의 장막을 걸었다고 합니다.[각주:1]

출처 :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사실 8월 31일까지 태평동 골목마다 에코밸리커튼이 휘날린다하여 그 모습을 아이들과 꼭 보고 싶었는데, 며칠 사이 폭우로 일찍 철거하여 거짓말한 엄마가 되어버렸죠. 오늘 문화의 날 행사도 폭우로 취소된다 말이 많았는데 다행히 개최되었어요. 태평3동 주민센터(최근에 행정복지센터로 이름을 바꿨지요.) 앞 작은 광장에 부스가 차려졌는데, 작은 마을 행사임에도 참 알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중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찔끔농부' 부스. 새하얀 머리의 어머님과 딸이 운영하셨는데 씨와 거름을 동글게 뭉친 씨앗볼을 나눠주는 '씨앗볼 던지기' 캠페인을 하고 있었어요. 공터에 이 씨앗볼을 던져두면 알아서 자연의 비와 바람을 맞고 자란다는 컨셉인데, 무심한 듯 참 자연스러운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이에 둘둘말아 씨앗볼 네개를 골고루 싸주셨는데 우선은 저희 집 베란다 난간에 심어볼 계획이에요.

역시 아이들에게는 페이스페인팅 인기가 최고지요. 연륜이 넘치신 분이었는데, 다른 행사에서 젊은 알바 언니들이 해주는 것과 차원이 다른 페이스페인팅을 받았어요. 큰 아이는 백조, 작은 아이는 돌고래. 안타깝게도 비때문에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두 아이 모두 백점 만점을 주었답니다.

한 켠에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진행되는 무대가 마련됐어요. 그 중 마리오네뜨 공연을 보여준 분은 김솔이란 마리오네뜨 장인분이신데, 멀리 부산에서 올라오셨다고 합니다. 삶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는 할아버지 마리오네뜨들이 나와 다양한 음악을 연주했는데, 아이도 어른도 눈을 뗄 수 없었죠.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한 나무반지는 참 쉽고도 의미있는 체험이었어요. 거칠게 제작된 반지를 사포질로 맨들맨들하게 만들고 오일을 발라 마무리하는 건데, 6세 큰 아이가 전 과정을 모두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했지만 정말 근사한 작품이 탄생했죠.

그 외에도 괴불노리개 만들기 체험, 다육화분 만들기, 업 사이클링 체험 등 전체 부스 수는 열개 남짓이었지만 이 날 주제인 '마을이 지구를 살린다'에 맞게 지역 활동가들이 지구를 위한 체험행사를 알차게 준비하셨더라구요. 아이들이 조금 더 컸다면, 날씨가 좋았다면 더 열심히 체험했을텐데 참 아쉬웠죠. 

그리고 이 곳에서 알게된 성남에서만 해당되는 친환경 꿀 팁!!

하나. 우산 분리배출방법! 우산 살과 천을 분리해서 살은 고철로, 천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성남환경운동연합에 고장난 우산을 가져가면 고쳐준다고 하네요.

  

둘. 우유팩을 모아 주민센터에 가면 화장지로 교환해주죠. 성남환경운동연합도 화장지 교환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그 기준이 상대적으로 후합니다. 1L 우유팩 10개, 500ml 20개, 200ml 40개 기준으로 화장지 하나씩 교환해준다고 하네요. 

 

제가 사는 곳에서 이 행사장까지 아주 가까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멋진 행사와 활동을 이제야 알았나 후회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메인인 에코벨리커튼을 못봤다는 게 참 아쉬웠는데, 내년을 기약해야겠죠. ㅜㅜ

성남시 태평동 문화예술공간인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홈페이지(http://openspaceblocks.com/)에 방문해보세요. :)




  1. 참고글 : https://pccekorea.blog.me/221342515560 [본문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