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샤워할 때 거품을 내기 위해 어떤 걸 사용하시나요? 일반적으로 홑겹 형태의 샤워타올이나 공 모양의 샤워볼을 많이 사용합니다. 저희 집 욕실에도 얼마전까지 샤워볼이 걸려있었어요. 바디워시 구매 시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었죠.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에는 대나무 섬유 소재의 샤워타올을 이용했는데, 제 경우 거품도 잘 나지 않고 물이 흡수되면 무거워져서 만족도가 떨어졌죠. 민감한 아이들 피부에는 오히려 맨손으로 비누칠을 해주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큰 아이가 네살 때 즈음 부터는 손으로 비누칠을 해주었어요.

샤워볼의 경우 색상과 크기만 다를 뿐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열이면 열, 리에스터로 만들어졌죠. 샤워타올도 마찬가지, 나일론 또는 폴리에스터이고 우리가 흔히 스펀지라 알고 알고 있는 것은 폴리우레탄입니다. 모두 플라스틱이죠. 때타올로 유명한 이태리타올은 비스코스 레이온이란 재생섬유로 만들어졌는데, 식물성 소재인 셀룰로오스로 만들어 지기는 하나 가공과정에서 많은 환경 오염을 야기하여 문제가 되고 있죠.

2017년에 모 방송사에서 샤워볼 세균이 변기보다 많다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그 이유는 샤워볼의 그물망 섬유에 낀 때가 잘 빠지지 않아 습식 화장실 조건에서 세균 번식이 더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거죠. 피부과 전문의 J. 매튜 나이트(J. Matthew Knight)는 그렇기 때문에 맨손 비누칠을 추천했고 샤워볼을 사용해야 한다면 최소 두 달에 한 번은 샤워볼을 교체하길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두 달에 한 번, 일년에 6개의 플라스틱 샤워볼이 쓰레기로 나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위생을 고려해 정석대로 한다면 어마어마한 샤워볼이 지구에 버려지는 셈이 됩니다.

이런 위생적인 문제도 있고, 미세섬유의 해양 오염 문제도 있고해서 욕실의 샤워볼을 교체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가장 먼저 시도했던 방법은 면사로 수세미를 떴듯이 면사로 샤워볼을 뜨는 거였죠. 모양은 그럴싸했으나 제 경우 면사 샤워볼은 실패작이었어요. 물을 흡수하니 아주 무거워졌고 비누 먹는 하마 마냥 비누도 오히려 많이 들어갔어요. 결정적인 실패 이유는 건조였어요. 습식 화장실에서는 며칠이 지나도 샤워볼은 축축한 채 마르지 않았죠.

그래서 면사로 헹굼용 수세미를 만들듯이 구멍을 크게 하여 떠보았는데 건조의 문제점도 거품이 적게 나는 문제점도 개선되었지만 면사 특유의 습한 환경에서의 변색 문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샤워 후 꼭 짜 햇볕에 말려주거나 삶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죠. 

그러던 중, 작은 아이의 기저귀 사은품으로 함께 도착한 것이 바로 이거였어요. 천연 해면 스펀지! 모양은 꼭 잘못 찍어낸 인조 스펀지 같습니다만 물을 묻혀보면 보송보송한 게 플라스틱 스펀지의 까칠거림이 전혀 없어요. 조직이 촘촘한 것 같다고 할까요. 정말 거품도 잘 일어나는데 일반 샤워볼과는 다른 잔거품이 생깁니다. 그리고 건조력은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잘 헹군 후 꼭 짜서 동봉된 스테인레스 집게로 집어 걸어두면, 물 떨어짐도 없이 서너 시간이면 완벽하게 건조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이 신기한 샤워도구를 애용합니다.

 

사실 해면 스펀지는 동어반복이에요. 해면의 영어 이름이 Sponge거든요. 만화영화 스펀지밥을 보면서 해양동물들 사이에 왠 수세미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주인공 스펀지밥은 인공 스펀지가 아닌 천연 해면을 의인화한 거라네요.

해면에 대해 잠깐 알아보면, 해면은 다세포동물 중 가장 하등한 몸의 구조를 가진 동물인데 대부분 바다에서 서식하고 있고 그 종류가 매우 많다고 합니다.해면은 18세기 전에는 식물이라고 알려져있었데요. 운동을 하지 않고 소화기관과 감각기관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18세기 초 체내의 깃세포가 운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때부터 동물로 분류하게 되었죠. 그래서 해면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해면동물이라 부르기도 하나봐요.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해면 종류는 목욕해면류(Euspongia officinalis, bath sponge)뿐이래요. 목욕해면은 색이 검고 한천질의 물질과 각질상섬유(角質狀纖維)의 불규칙한 골격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건조시켜 염산에 넣어 잡물을 제거하고 옥살산[蓚酸]으로 탈색한 다음 수산화나트륨(가성소다)으로 선황색(鮮黃色)으로 만들어 물에 씻어 건조하면 우리가 접하게 되는 목욕용 스펀지가 된다고 해요. 타이완, 필리핀, 카리브해, 북아메리카의 플로리다주 등에서 생산되고 있으나 품질은 지중해의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고 하네요.[각주:1]

천연 해면 스펀지 사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바로 남획에 대한 건데요, 미용용도로 마구 잘라낸 해면이 바다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주장이 있어요. 해면 특성상 아무리 많이 잘려져도 잘린 부분의 1/3 정도는 다시 성장한다고 해요. 그만큼 자생력이 강한 생물이라는 거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면을 생산하는 플로리다의 경우 매년 약 6만파운드(약 2만7천kg)의 천연 해면을 수확하는데, 이 양은 2차 세계 대전 이전의 1/10 수준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네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 로마 시대때부터 사용하다보니 지중해의 해면이 많이 줄었는데 인조 스펀지가 개발된 이후 다시 개수가 늘었다고 합니다. 천연 해면 스펀지 생산 비용보다 인조 스펀지 생산 비용이 워낙 저렴하다보니, 이러한 남획 우려는 아직은 기우같습니다. 해면의 생존을 가르는 건 지구온난화 문제가 남획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심각하다고 합니다.[각주:2] 더불어 플라스틱에 의한 해양 오염도 해면의 생존을 위협하겠죠.

천연 해면 스펀지는 지금의 플라스틱 샤워볼, 샤워타올을 대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연소재이고 가공과정이 단순하면서 독성이 매우 낮고 쓰레기를 매우 적게 생산해내는 프로세스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는 각질제거용으로 한 뷰티 전문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후 점차 사용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 Non Plastic 측면에서는 바람직해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용한 천연 해면은 일반 샤워볼이나 샤워타올보다 고가이다 보니, 저희집에서는 아이들만 이 천연해면을 사용합니다. 저와 남편은 면사 코바늘 샤워타올을 이용하고 있구요. 조만간 출산하는 지인들이 많은데 출산 선물로 플라스틱 포장 없는 바스 비누와 함께 이 천연 해면 스펀지를 사줄 계획이에요. 플라스틱 없는 욕실을 구상하고 계신다면 천연 해면 스펀지도 함께 고려해보세요~ :)

  1. 출처 : 두산백과 '해면' http://www.doopedia.co.kr [본문으로]
  2. 출처 : Are natural sea sponges greener than synthetic shower poufs? / mother nature network, 2009.3.24. [본문으로]

올 여름 휴가는 친정에서 길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남편의 여름휴가와 작은 아이의 어린이집 방학 기간까지 붙여 2주간 있게 되었죠. 휴가가 기대한 것만큼 낭만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하루 들른 고성에서 휴대폰을 분실하는 바람에 남은 1.5주를 반강제적인 휴대폰 없는 생활로 지내야했고, 그로 인해 몇가지 골치아픈 꼬인 일들이 발생했고, 돌아오기 며칠 전에는 밤 중에 지네에 물려 시골집에 대한 낭만이 잠시 사그러들기도 했죠. 

수도권의 여름은 찜통같다했지만 다행히 친정은 남해바다와 인접하고 지리산 가까이에 위치해서 아주 덥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더운 한낮에는 그 흔하던 모기도 숨어있어서 마루에 발담그고 앉아있으면 이런 천국은 따로 없다고 느낄 정도였지요. 하지만 한낮의 운전은 아무리 빵빵하게 에어콘을 틀어도 너무 힘이 들었어요. 숨이 턱 막혔죠.

휴가에 대한 원래의 포부는, 시골에 가니 가능한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자였습니다. 하지만 친정임에도 제 집은 아니고, 이 공간에 손님으로 오다보니 최선을 다하는 걸로 만족하게 되나봅니다. 외출 시에는 항상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가져갔고, 친정엄마를 위해 면사로 뜬 수세미와 네트백도 선물로 드렸죠. 

그리고 휴가 도중에 만난 반가운 소식. 환경부가 일회용 플라스틱컵 남용에 대한 본격적인 단속을 실시하면서 제가 방문한 프랜차이즈점들은 뭔가모를 긴장감이 많이 느껴졌어요. 수도에서 먼 남쪽 지방이었지만 소규모 점포에도 일회용컵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었고, 어색하지만 유리컵과 머그컵 사용을 물어보는 곳도 꽤 있었구요. 특히 박물관, 과학관 등 공영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카페의 경우 텀블러 할인 혜택은 물론이고 아주 잘 된 메뉴얼에 따라 서빙하고 있었죠. 

집에 돌아온 주말은 연휴의 여운에서 허우적거리며, 만사 다 귀찮다는 태도로 보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서야, 이주간의 행적에 대한 소회를 풀고자 합니다.

하나. 곳곳에서 만난 아이디어

저는 모든 사람들, 환경문제에 관심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무의식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친환경적인 습관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선택이나 행동을 한 이유가 본래 환경을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어느 시각에서 보면 다분히 친환경적일 수 있죠. 

가장 먼저 발견한 아이디어는 액체류를 배송할 때 사용하는 비닐뽁뽁이를 화분으로 사용한 휴게소의 어느 가두매장이었어요. 포장재에 물을 담아 들꽃하나 꽂아놓은 것이 어찌나 제 눈에는 시크하게 보이던지. 저 포장재를 많이 사용하는 곳이라면 화분 아이디어를 활용해 최근 유행하는 플랜테리어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친정집을 가는 길에 시부모님이 여가생활을 즐기고 계시는 경상도 백운산 자락을 들렀어요. 해발 600m 고지의 이곳은 청정 그 자체였죠. 미세먼지 알림앱이 아무리 빨갛고 노랗다하더라도 이 곳은 모든 지수가 한 자리 수의 파랑이었어요. 하늘은 높고 공기는 맑고 시원하고. 장수풍뎅이가 시부모님의 컨테이너 주변에서 놀고 새벽에는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시끄러웠죠. 뻐꾹이, 소쩍새, 딱따구리 등 제가 아는 선에서의 새들은 모두 모아놓은 것 같았어요. 이곳에서의 하룻밤은 몸도 마음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시부모님의 아이디어들은 곳곳에 숨어있었어요. 직접 아버님께서 만드신 다양한 나무가구부터, 이 곳에 오실적에 나뒹굴고 있던 물탱크를 샤워장으로 개조하셨구요. 특히 감탄했던 것은 생태화장실이었어요. 상하수도 설치가 안된 이 곳에서 변을 처리하기 위해 아버님은 생태화장실을 만드셨는데, 소변은 따로 모아 요소비료로 사용하시고, 대변은 톱밥으로 덮은 후 땅에 묻어 거름으로 사용하시고 계셨죠. 옛날 푸세식 화장실을 생각해 냄새와 파리를 걱정했는데, 정말로 신기하게도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어요. 투박한 솜씨이나 이렇게 친환경적인 화장실은 처음이라 참 놀랐지요.

친정 아버지도 전문적으로 배운 목수일은 아니지만 뭐든 뚝딱 만드시는데, 오래된 것과 자연의 것을 해치지 않고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금자리를 꾸미셨어요. 녹차나무로 울타리를 세우고, 그 지역 폐벽돌을 실어와 길을 만들고, 그 땅 오랫동안 박혀있던 바위를 살려 쉼터를 만드셨죠. 빠르고 쉬운 방법대신 택한 방법은 투박하지만 든든했고 자연스러웠습니다. 그 곳에서 노는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둘. 언제 어디서나 텀블러, 다회용 빨대, 손수건

소지품이 어쩔 수 없이 많아지는 여행길이지만, 텀블러와 빨대, 손수건은 여행의 필수 아이템이었어요. 텀블러는 냉커피를 오랫동안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정말 좋은 도구였고, 아이들의 남은 음료도 담아갈 수 있었죠. 아이들을 위한 실리콘 빨대 덕에 일회용 빨대를 거부할 수 있었어요. 손수건은 입을 닦고 코를 푸는 용도 외에도 여행 중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요. 즉흥적인 바닥분수 물놀이로 젖은 아이들의 옷을 말리는데 요긴하게 사용했고, 무더위에 적셔 머리위에 올리면 더위도 이겨낼 수 있었어요. 여행 중간에 작은 아이와 제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적게 가져온 손수건이 아쉽긴 했지만 텀블러와 빨대, 손수건은 제게 필수품이 되어 버린 걸 알 수 있었어요.

고성 공룡박물관 카페는 그 곳 로고를 멋지게 새겨넣은 유리잔에 음료를 담아 나무 쟁반에 담아줬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너무 더워 전망대 이 카페까지 아무도 오지를 않아, 저희만 전세 내듯이 쉬었다 왔죠. 고흥 나로우주센터에 갔을 때 텀블러는 더욱 빛났어요. 무려 이곳에서는 개인컵을 가져오면 1천원이나 할인되었거든요!

그리고 항상 가방 깊숙히 넣어다니는 장바구니는 효자노릇을 했는데요. 친정엄마의 장보기에 따라가서도 일회용 봉투 사용을 만류하고 제 장바구니를 이용할 수 있었죠. 가볍고 큰데 튼튼하다는 엄마의 평가에 그 장바구니는 엄마께 드렸고, 간김에 네트백도 하나 떠 드렸습니다.

셋. #2 Minute Beach Clean

이번 여행에서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물놀이였어요. 남쪽 바다를 가는데 해수욕을 안할 수 없잖아요. 친정 가까이에 계곡도 많답니다. 하지만 2주의 일정 동안 물놀이는 전혀 할 수 없었어요. 해가 너무 강해 오히려 해수욕장엔 사람이 너무 없었고, 반대로 계곡엔 관광객들이 넘쳐났죠.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이유로 물놀이는 친정 시골집에서만 하는 것으로 결정했죠. 외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위해 쉼터 크기에 꼭 맞는 풀장을 준비해주셨어요. 근처 계곡물로 채우니 여느 계곡들 부럽지 않은 개인 물놀이장이 완성되었습니다.

여행 중 읽고 있던 책 <No. More. Plastic.>의 저자는 #2minutebeachclean 운동의 창시자이고 바닷가 여행에서 2분만 투자해 플라스틱 쓰레기를 치우길 권장했죠. 저 또한 해양쓰레기의 심각성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올 여름 바다에 간다면 꼭 #2minutebeachclean 운동에 동참하자라고 남편과 얘기했었어요. 유난히 더워 해수욕장 근처도 못간 이 여름에, 저의 첫 실천은 고성 공룡테마파트 안의 상족암에서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덥더라도 공룡발자국은 직접 봐야 한다 생각해 내려갔는데, 절경에 먼저 놀라고, 구석구석의 쓰레기들에 또 한 번 놀랐죠. 그 좁은 곳에, 그리고 우리가 보존해야할 유산인 곳에 왜이렇게 쓰레기가 많은 거죠. 가장 많았던 것은 근처 양식장에서 흘러 들어온 스티로폼 부표였구요. 생수통과 일회용 플라스틱컵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어요. 간혹 맥주패트두요. 이런 곳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터라, 제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봉투인 아이 기저귀 담는 용도의 지퍼백에 담았는데, 씁쓸하더라구요.  

넷. 시골집의 낭만, 자연놀이

이번 여행에 아이들이 가져온 개인 장난감은 각각 한가지. 큰 아이는 최근에 생일로 받은 미미인형, 작은 아이는 캐릭터페어에서 사준 덤푸 다이제스트였죠. 하지만 아이들은 이 장난감들을 가져온 첫 날 빼고는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할아버지가 작업 후 땔감으로 모아둔 나무 조각들을 블럭 삼아 가지고 놀았고, 천지에 있는 감나무잎과 마른 대나무 가지로 발을 만들고 놀았죠.

그리고 시골집의 여름밤 백미인 봉숭아꽃 물들이기도 했어요. 저 어릴 적엔 엄마가 손톱에 올린 후 랩으로 감아주셨는데, 비닐과 플라스틱 없는 경험이 되라고 가지고 간 광목천으로 감싸고 면사로 묶어줬죠. 백반을 넣지 않아 색상이 진하진 않았지만 예쁜 색이 나왔습니다.

연휴 속에서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는데, 연휴가 끝나고 보니 그 시간이 참 빨리도 가버리네요. 가장 더울 때를 피해 갔다와서 서울이 그렇게 더웠나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떨어진 듯합니다. 오랜만에 느끼는 선선한 이 밤이 너무도 소중하네요. 이번 여행은 플라스틱과 일회용에 대해 완벽한 휴가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제 스스로의 약속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었고, 그러한 생활에 익숙해진 제 모습이 많이 대견스러웠습니다.

아이들 돌보느라 당시에는 잘 쉬었다 말하기 어려웠지만, 일상에서 떨어져 새로운 경험과 낭만을 즐긴 것만으로도 생기가 충전되니 좋은 여행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친환경적인 여행이 그리 거창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작은 준비만 필요할 뿐이죠. :)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생활을 해보자라고 마음 먹은 후 블로그를 운영한 지 약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3개월의 고비가 찾아왔어요. 요즘 저의 상태는 마음과 실천의 이질적 분리라고 할 수 있어요.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갈등하는 상황, 어떻게 해야할 지는 알겠는데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죠. 

하나, 유별나다는 평가에 대한 두려움.

플라스틱의 남발, 해악성에 대해 관심이 늘다보니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이 부분을 언급하게 되요. 그리고 제가 제 성격을 아니 이 대화가 상대방에게 불편할 지 몰라 조심하게 되죠. 마치 정치나 종교얘기처럼 말이에요. 한편 플라스틱의 해악성, 실태에 대한 제 언급이 상대방에게 어떤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을 지모른다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도 꿈꿉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슈에 대한 중요도가 다르듯이 반응도 다르죠.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며 처음 글을 쓸 때도, 이 부분을 이해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환경 이슈에 대한 성선설-누구나 환경 이슈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나 후천적 영향으로 실천이 어렵다, 환경 이슈의 중요성을 알기에 체감하지 못하는 사소한 한 가지라도 친환경적인 실천을 누구나 하고 있다는 제 나름의 해석-을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 다짐을 했음에도, 실제로 이러한 대화가 진행되면 상처받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제게 상처가 된 반응 중 하나는 "OO은 플라스틱 안 쓰지"와 같은 말이었어요. 저는 보편타당한 상식을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OO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저를 별종인 사람으로 판단하는 꼬리표같은 말로 바뀐 거였죠. 이 말이 제게 왜 불편할까 생각하니 여러가지가 복합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제 설득이 먹히지 않은 데에 대한 허무함이고, 또 하나는 상대방을 설득하기에 부족한 제 어중간한 상황-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겠다 말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상당 부분이 플라스틱인 것-에 대한 자책, 그리고 제 스스로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인정하는 용기의 부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둘,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용기.

만약 제가 온 집안의 플라스틱을 모두 없애고 대체안을 모두 마련한 다음 시작했다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이, 가지고 있는 플라스틱들과 재사용 및 재활용으로 타협하고, 어쩔 수 없는 플라스틱 소비는 허용하다보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실천의 속도가 더디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하구요. 저는 열심히 실천한다고 생각했는데 시선을 어디에 돌려도 플라스틱은 도처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실천은 갈등의 연속입니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 수집에 대한 실천은 참 어렵습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는 제 오래된 신념이면서 6살 딸 아이도 아는 상식인데, 너무나 사람들은 쉽게 쓰레기를 만들고 버립니다. 가령 저희 아파트 놀이터에는 하교길 아이들이 버린 것 같은 과자봉지며 어른들의 담배꽁초가 자주 눈에 띄입니다. 미화원 분들이 일일이 청소하시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쓰레기를 '쓰레기네'하고 줍고 말면 쉬울텐데, 그 쓰레기를 보고 드는 첫 감정이 비상식적인 행동에 대한 분노와 짜증이다보니 오히려 손이 안가는 것 같습니다. 

셋, Out of Control.

7월은 일년 중 가장 바쁜 달입니다. 연이은 생일과 행사로 마음과 시간을 써야할 곳이 많죠. 그러다보니 부딪히는 일상에서 순발력있게 플라스틱을 거부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주문제작한 딸 아이 생일 답례 케이크는 투명하고 예쁜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있었습니다. 두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페어에 갔을 때 받아온 대부분의 기념품들은 비닐과 플라스틱이었구요. 올 여름 제 나름대로 열심히 거부하고 있는 홍보용 플라스틱 부채는 벌써 두 개나 집에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고민고민하여 야심차게 들여놓은 새 물건을 택배로 받아보니 거대한 부피의 스티로폼 포장이 제 마음을 짓눌렀죠.

실천이 깔끔하게 No Plastic 결과로 되돌아 오는 경우가 적다보니 더욱 지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제 현실에 단비같은 책이 있었어요.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 류동수 옮김 / 양철북)」라는 책인데, 요즘의 제 심경을 어찌 그리 잘 아는 지, 제가 이 책의 저자인양 공감하며 읽었어요. 저자가 일년 반 동안의 좌충우돌 상황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을 거쳐 어느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겠죠. 제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심정을 너무나 잘 담았더라구요. 이 책의 끝맺음 말은 저를 따뜻하게 위로합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그런 의욕을 유지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 한마디만 더. 한두 가지의 작은 태도 변화로 시작해서 서서히 그러나 확고하게 더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 경험상 이런 일은 재미가 있고 기분이 좋으면 스트레스와 양심의 가책을 갖고 할 때보다 훨씬 더 잘, 그리고 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목표를 너무 크게 잡으면 실패하기 쉽다. 그리고 의욕이 저하되었을 때는 멋진 자연의 품에 안겨 자신의 행동의 동인이 무엇이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그것과 서로 잘 어울리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지금 제게 필요한 건 반성과 자책보다는 여백과 여유인 것 같습니다.


P.S.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 '올바른 소비'를 위한 팁의 일부는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공유합니다.

<물건을 구매할 때 항상 유념해야 할 사항들>

- 대규모로 광고하는 제품들은 특히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 품목별로 자기가 구입하는 제품을 정해 둔다. 

- 포장이 간결한 제품을 선택한다.

- 물건을 담아 올 용기와 천 쇼핑백 또는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닌다. 

- 공짜로 주는 비닐봉지는 반드시 거부한다.

- 가능한 한 천연재료, 특히 자기 지역에서 난 것을 선택한다.

- 합성소재를 피할 수 없을 때에는 품질과 내구성이 좋고 필요할 경우 수선도 가능한 제품을 선택한다.

-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라는 격언을 항상 염두에 둔다.

- '옛' 해법을 더올려 본다.

- 각종 세제의 사용량을 감각적으로 부족하다 싶을 만큼 줄인다.

- 식료품이나 기타 소비재를 자기가 사는 곳 바로 인근에서 살 수 있는지 항상 확인한다.

- 필요하다면 공동구매를 적극 조직한다.


P.S. 혹시 저와 같은 고민이신 분이 계실까요? 그런 분들 중 이 책을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댓글 달아주세요. 제가 읽은 책이지만 드림하고 싶습니다.




지난 7월 1일 플라스틱 어택의 코스튬으로 만들었던 빨대 별이에요. 당시 저희 집은 200ml 종이팩 두유를 박스채 배달해서 마시고 있었는데요. 종이팩 하나하나에 붙어있는 빨대들을 과거에는 편리하다고 생각해 잘 사용했지만, 빨대를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실천한 후에는 이 빨대들이 처치곤란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혹시 모를 어느 날을 위해 비닐 포장채로 뜯어 모아놓고 있는데, 가끔 규칙을 어기고 편리를 찾을 때면 어김없이 5분의 역할을 다하고 분리배출 대상이 되어버리는 빨대가 나옵니다. 이러한 플라스틱 빨대는 부피도 작고 세척도 어려워 분리배출해도 재활용이 잘 되지 않아요. 그래서 더이상은 빨대가 부착된 소포장 두유는 마시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우리 집에서는 마지막으로 사용된 이 빨대들을 나름 기념함과 동시에 이별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작은 소품을 만들었어요.

빨대로 별을 만드는 방법은 몇가지가 있는데, 의외로 이렇게 만드는 방법은 잘 안알려진 것 같아 소개해 드릴게요.

이름하여 "지구를 위한 아름다운 이☆(별)"입니다.

준비물로는 같은 길이와 굵기의 구부러진 빨대 5개가 필요해요. 두유팩, 주스팩에 붙은 빨대로 만들면 손목에 낄 수 있는 크기가 되고 카페에서 사용하는 구부러진 빨대는 그보다 더 커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하얀색이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빨대 디자인에 따라 색상과 무늬도 달라 질 것입니다.

방법은 초간단해요. 5개의 빨대를 같은 방향으로 차례로 연결해주세요. 빨대의 한쪽 끝부분을 아래처럼 접어서 넣으면 쉽게 잘 들어 갑니다. 5개의 빨대를 모두 연결하면 아래 오른쪽과 같은 오각형 모양이 돼요.

 

그런 다음 아래 동영상처럼 비틀며 접은 후 한 쪽 별 모양 끝을 뒤쪽으로 넣으면 끝! 완전 쉽죠~!

플라스틱 어택 코스튬 때에는 행사 의미를 좀 더 부각시키고 팔찌로서 내구성을 보완하기 위해 빨대끼리 곂치는 부분에 마이쮸 개별 포장 비닐을 줄 삼아 묶었어요.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한다면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비트는 과정에서 빨대의 주름 부분이 꼬였다면 꼬인 빨대를 잡고 살짝 돌려주면 꼬인 것이 풀려요.

여러개의 빨대 별을 만들고 낚시줄을 끼워 모빌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구요, 유산지나 천을 덮고 납작하게 만들어 북마크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아요. 참 쉽게 만들 수 있는 별이지만 클래식한 맛이 살아있습니다. 딸 아이에게 마술이라며 빨대 5개로 순식간에 별을 만드니 매우 신기해하고 재밌어했어요. 6세 아이도 금방 배워서 따라 만들더라구요.

매일 버려지는 빨대가 아깝다면. 빨대와의 의미있는 이별을 준비한다면, 이런 방법의 재활용은 어떨까요? 

이상 IDEA MOUTH였습니다.


참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어요. 미션 장소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내 홈플러스. 제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1시간 30분 떨어진 거리죠. 쇼핑하는 기분으로 가족 모두가 같이 가려했는데, 거리가 너무 멀고 비가 많이 내려, 결국 엄마만 가기로 결정했어요. 많이 소심한 성격에 긴장했는 지, 전 날 밤은 잠이 잘 안오더라구요.

이 날의 드레스 코드는 화이트 티셔츠에 비닐봉지, 플라스틱으로 꾸미기. 어떤 걸 준비해갈까하다 아이들 미술재료로 모아 둔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목걸이를 만들었어요. 연두색은 작은 아이의 액상분유 뚜껑, 주황색은 큰 아이의 녹즙 뚜껑인데 날짜 보이시죠? 벌써 몇해 묵은 것들입니다. 만드는 방법은 엄청 쉬운데 현장에서의 반응 또한 좋았던 아이템이었어요. 색상 배치가 괜찮아서인지 언뜻 보면 병뚜껑인지 모르셨던 분들도 계셨구요.

지하철에서 열차기다리며 간밤에 만든 빨대별도 사진찍었어요. 저 별은 나름 제 야심작이었는데,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와 아름답게 이별하는 방법이랄까..두유팩에 붙어있는 빨대 5개로 만든 건데 플라스틱오염 퇴출 1호인 플라스틱 일회용 빨대와 이제 작별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연결고리 부분은 아이들이 사랑하는 마이쮸 개별 비닐포장으로 묶었어요. 나름 팔찌입니다.

의미 듬뿍 담아 소품 준비하고서는 정작 현장에서는 소소하게 치장하고 손바닥에 '비닐, OUT' 적은 뒤 소심하게 셀카 한 장만.... 남편에게 인증샷으로 보내니 남편 왈 "무슨 죄 지었냐고....". O.M.G.

그 날 약 30명 정도가 와주셨어요. 약속 장소에서 OT받고 매장 내부로 들어가서 자유롭게 쇼핑하고 야외 집결지에서 포장을 모두 뜯고 가져온 용기에 담은 후 같이 구호를 외치는 여정이었죠. 생각보다 많은 취재 인원에 깜짝 놀랐어요. 가장 핫한 퍼포먼스를 보여 준 참가자에 대한 관심은 아래 사진 정도. 지나가시는 분들, 오늘도 영화 촬영왔냐고... 

저 취재 열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분이십니다. 강렬하게 플라스틱 비닐봉지 과대포장 OUT 메시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계시는데, 많은 매체에 이분의 사진이 실렸어요.

이 후 야외 집결지에서 각자 산 물건들의 플라스틱 포장을 모두 뜯어 한 데 모았구요, 각자 가져온 용기에 다시 담았어요.

 

그리고 함께 모여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칩니다. 여러 메시지가 있었지만 가장 강렬했던 건 역시 "껍데기는 가라!".

전 어디있냐구요? 저 뒤 "포장재 가이드라인 마련하라" 팻말을 들고 있는 게 접니다. 사진도 소심하게.

아래 왼쪽 사진은 이 날 제가 장 본 것들이에요. 돌아가는 길도 먼 길이라 신선제품은 거의 못샀어요. 과일, 야채, 설탕, 아이들 간식, 그리고 제가 애정하는 그롤쉬맥주. 그롤쉬맥주는 친환경 병 디자인으로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어요. 저희 집에서는 500ml 플라스틱 생수병 대신 저기에 담아 놓고 외출 시 하나씩 가져가죠. 저런 모양의 병을 돈 주고 사려면 약 5천원인데 행사 가격으로 세 병에 9천5백원 정도에 샀어요. 맥주도 먹고 병도 얻고 일석이조 아닌가요. 그롤쉬는 홈플러스에서만 팝니다, 제 경험으로는요. 

제가 속도가 너무 느리고 현장 분위기에 정신이 없어서, 깜박하고 현장에서 포장재 벗기고 용기에 담는 사진을 못 건졌어요. 무거운 짐을 이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결국 남편에게 SOS쳐서 중간에 만나 차로 돌아왔죠. 집에 돌아와 축 쳐져있다가 겨우 정신 차린 후 장 본 사진을 찍어보니 참기름이 어디로 도망갔네요. 젤리는 아이들이 벌써 반 이상 먹어 버렸구요... 이렇게 플라스틱 어택@서울의 하루가 지났습니다.

 

다행히 여러 매체에서 관심을 가져줘서 노출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더구나 이 날 밤 11시에 SBS 스페셜에서 <식탁 위로 돌아온 미세 플라스틱>을 방영해 사람들의 관심도 부쩍 늘어난 것 같아요. 이 날 현장에서 만난 분들은 환경단체 소속이신 분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발적으로 동참한 사람들이었어요. 블로그 이웃분들이나 인스타그램 팔로워분들도 계셨는데 얼굴을 모르니 지나고 나서 이분도 여기 계셨구나 알게됐습니다. 이 날 제 개인적으로 뽑은 베스트 드레서였던 루비아님은 제가 즐겨 방문하는 네이버 블로그 이웃님이셨어요. 저보다도 더 생생하게 현장 분위기를 담아 후기를 작성하셨더라구요.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바로가기>>)

이런 행사 참여는 처음인지라, 많이 긴장되었지만 관심을 같이 하는 동지애가 느껴지는 현장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행사는 과거형의 뉴스거리일 뿐이겠지만, '맞아, 플라스틱 포장 너무 심해. 바꿔야해'라고 한 분이라도 공감 해주신다면 하루 고생을 보상하는 활력소가 될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경험이었고, 이름모를 어느 분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No More Plastic!!!


화, 수요일쯤 도착한다 했는데 수요일 저녁까지 소식이 없었죠. 밤 중에 택배아저씨가 살포시 놓고 간 꾸러미들 사이에 쓸(SSSSL)이 있었어요. 조금 더 일찍 이 잡지를 알았더라면 창간호부터 후원했을텐데... 너무도 궁금한 창간호는 어디에서도 구매할 수 없고. 그래서 이번 2호는 더욱 더 기다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역시나 기대를 거스르지 않고 예쁘고 알찬 잡지가 되어 도착했네요.0

축구 경기 환호가 한 숨 지나간 후, 가족들 모두 잠든 밤에 바닥에 배 깔고 한 두장 넘기다보니 금새 정독을 마쳤어요. 환경정책부터 생활 속 실천 방법까지 치우침 없이 내용이 알차요. 환경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아요. 팩트와 훈수로 주로 이루어지는 딱딱한 전문 잡지가 아니에요. 오히려 인간적이랄까. 사람 사는 이야기,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용기있게 선택한 불편한 삶의 이야기. 제로웨이스터로 너무나 유명하신 분들의 이야기들도 즐거웠고, 편집자의 제로웨이스트 생활 가운데 체감한 갈등과 아이러니 이야기는 백분 공감했습니다.

다행이에요, 우리나라에 이런 잡지가 있어서. 후원자 명단에 제 이름이 들어있는 걸 확인했을 때 뿌듯했어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더 좋겠다는 아쉬움도 느꼈죠.

우선 남편에게 보여주려구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용감해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다라고 말할 것 같아요.

쓸 제작자분들 고생 많았어요, 3호, 4호도 계속 기다릴게요.

***

쓸 Vol.2는 아래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어요.

서울 성동구 : 새활용플라자 308호, 옥수책방, 프루스트의 서재

서울 은평구 : 오혜서점, 책방비엥

서울 마포구 : gaga77page, 이후북스, 짐프리, 책방여유물질, 책방연희, 책방꼴, 책방 탐구생활, 퇴근길 책 한잔, 헬로인디북스

서울 용산구 : 스토리지북앤필름

서울 중구 : 책방요소

서울 종로구 : 플랫폼 510


대구 중구 : 고스트북스, 더 폴락

포항 남구 : 달팽이 책방

경주 황남동 : 책방 지나가다

제주도 서귀포시 : 라바북스, 책방무사

길게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최근에 여러가지 플라스틱 없는 생활에 변화가 있었어요.

하나.

생수를 끊었어요. 남편이 저렴하게 구매했던 생수 쿠폰이 5월 말로 만료가 됐어요. 남은 걸 모두 소진하는데 조금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쿠폰 만료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약 24통의 생수가 공중으로 사라졌어요. 아쉬운 건 돈이고, 바람직한 건 더 빨리 생수와 이별할 수 있게 된거죠. ㅎㅎ; 아래는 환경의 날을 앞두고 인스타그램에 beachdonkkrillmyvibe(바로가기)라는 분이 올린 그림이에요. 일회용컵, 일회용빨대, 일회용봉투, 플라스틱생수 이 네가지를 바다를 위해 꼭 근절해야할 것들로 말했죠. 이 삽화를 처음보고 굉장히 공감했어요. 그리고 생수와 작별함으로써 이 네가지를 모두 실천하게 되었네요. 참으로 뿌듯합니다.

생수 대신 어떻게 식수를 해결하냐구요? 처녀 시절, 제가 했던 방식으로 돌아갔어요. 수돗물 끓여 마시기. 찬장 높은 곳에 처박아 두었던(...) 낡은 스테인레스 주전자를 다시 꺼냈고, 매일 아침 물을 끓입니다. 삐~하는 물 끓임 소리가 다시 정겹게 느껴져요. 친정엄마한테 배운대로 뚜껑을 닫고 펄펄 끓인 후 뚜껑을 열고 5분 정도 더 끓입니다. 그러면 수돗물의 불순물들이 기화되어 날아간다 그러네요. 남편은 끓인 수돗물의 비릿한 쇠맛이 싫다고 해요. 남편 물에는 티백을 넣어줘야겠어요.

작은 생수병 7개는 여름철 보냉제겸 외출 시 마시기 위해 냉동고에 저장해놨어요. 올해 말까지 수돗물을 끓여먹어보고 계속 이렇게 할 건지, 정수기를 들여 놓을 건지 결정할 것 같아요. 6월 어느날, 이렇게 생수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둘.

자연모로 된 첫 세척솔을 구매했어요.

홈플러스에서 데려온 맥주병이 재사용가능하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물병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500ml 크기가 한끼 식사 용 물로 적당합니다. 다만 좁은 병 입구에 저희 집 세척솔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오일병 하나도 예전에 비었는데 솔이 들어가지를 않아 세척 못한 채 몇 개월 두고 있구요. 이참에 플라스틱모가 아닌 자연모로 된 세척솔을 구매하자고 마음 먹었는데, 마침 모던하우스에서 적당한 걸 발견했어요. 생각보다 부피가 커서 저희 집 병들 입구에 들어갈까 의심했는데, 다행히 꼭 맞습니다. 세제를 묻혀 거품을 내고 병 안 구석구석 닦은 후 헹궜는데 완벽히 투명하게 잘 닦였을 때의 그 쾌감. 건조된 돈모는 나일론모처럼 뻣뻣한데, 물을 묻히고 세제를 묻히니 신기하게도 엄청 부드러워지네요. 앞으로 애정하며 사용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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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마로 바꿨어요. 결혼 때부터 사용해온, 근 7년이 다 된 플라스틱 인덱스 도마를 처분하고 새 도마로 갈아타려고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이왕이면 나무도마. 그 중 캄포도마가 눈에 아른거렸는데 가격이 너무도 사악했죠. 마침 근처 모던하우스에서 홍송으로 만든 양면 나무도마를 발견했어요. 가격도 캄포도마의 1/4 수준인데 세일 기간이라 더 저렴하게 데려왔죠. 역시 나무도마의 칼 소리는 경쾌합니다. 실력있는 쉐프가 된 것 같은 기분좋은 착각도 빠집니다.

처음으로 플라스틱 인덱스 도마로 바꿨던 기억이 떠올라요. 당시 항균기능이 뛰어나고 용도대로 골라서 사용할 수 있고 흠집이 안난다하여 신혼 살림으로 당시에는 고가였던 인덱스 도마를 구입했었거든요. 기대감에 정말 조심조심 처음 칼질을 했는데, 도마에 칼 흠집이 생겨 속이 상했던 게 기억이 나요. 반대로 오랜만에 나무도마를 사용하면서 흠집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전혀 흠집이 남지 않습니다. 기대효과인걸까요, 이게 사실인걸까요. 앞으로 오래오래 잘 사용하겠습니다.  

넷.

장난감이 들어있는 킨더조이와 작별했어요. 저 또한 피규어들을 좋아하고 약간의 수집병도 있어서, 아이들이 마트 스낵코너를 지나갈 때 킨더조이 사달라고 하면 무심결에 들어줬었어요. 매일 사주는 것도 아니고, 편의점이나 동네 수퍼보다는 마트가 저렴하니까, 장난감 퀄리티도 아주 나쁘지는 않으니까 몇개월에 한번정도 사주었죠. 남편은 이런 저를 기준없다 비판했어요. 장난감을 사주는 거냐, 간식을 사주는 거냐 그러면서요.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킨더조이를 사주면서 왠지모를 찝찝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는데, 그 이유를 찾았어요. 그건 바로 아이에게 초콜릿도 장난감도 아닌 플라스틱을 사주고 있었다는 깨달음이었죠. 

큰 아이에게 물었어요.

"엄마는 이제까지 네게 초콜릿을 사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니까 플라스틱을 사준 것 같아. 장난감도 플라스틱, 포장도 플라스틱, 숟가락도 플라스틱, 포장 비닐도 플라스틱. 이 작은 킨더조이 하나에 플라스틱이 초콜릿보다도 훨씬 많아. 플라스틱을 많이 쓰면 바다랑 지구가 아프다고 말했었지? 그래서 앞으로는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초콜릿말고 제대로 된 초콜릿을 사주고 싶어. S는 어떻게 생각해?"

쿨하게 큰 아이는 대답합니다.

"그러세요."

맞아요. 엄마가 항상 문제죠. ㅎㅎ


실리콘, 스테인레스 빨대와 함께 아마존에서 비즈랩도 구매했어요. 상품화된 비즈랩중에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제품인데요, 중간 비닐창 빼고 포장 또한 군더더기 없이 재생종이로 되어있습니다. 설명서는 작은 종이 하나, 그리고 크기 별로 3장이 들어있어요. 몸에 좋을 것 같은 벌꿀향이 진하게 납니다.

제품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을 때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투명 랩을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막상 설명서를 읽어보니 차가운 물로 씻어야하고 재사용 기간은 1년이고(반영구는 아니었어요) 육류를 싸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죠. 불에 약하니 전자렌지나 오븐에 넣으면 안되고 커팅보드로도 사용하지 말라고 해요. 제약이 참 많죠... 제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쓰임은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 여기에 싸달라고 하고, 김밥 등을 쌀 때 이 위에서 썬다음 바로 둘둘 말아 사용하고 음식을 전자렌지에 데울 때 그릇에 비즈랩을 덮어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모두 못하게 된거죠.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 처음 받고 사용설명서를 보았을 때는 좀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약 2주일 사용해보니, 의외로 사용할 용도가 많더라구요. 우선 큰 아이의 문화센터 요리수업에 가장 큰 사이즈를 가져가는데요. 그 날 요리가 커서 가져간 용기에 담을 수 없어서 가장 큰 사이즈의 랩으로 싸서 재사용봉투에 담아 왔어요. 다른 친구들은 나눠준 PP 봉투에 넣은 후 비닐봉투에 담아갔는데, 그 것과 비교하면 2장의 비닐봉투를 아낄 수 있었죠. 

집에서는 남는 재료들을 보관할 때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간 사이즈는 남은 두부를 보관할 때 본 용기 위에 덮어서 사용하구요. 큰 사이즈는 남은 베이컨을 보관할 때 포장 채 둘둘말아 사용해요. 유리 용기에 옮겨서 뚜껑을 닫고 보관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보관하니 용기를 추가로 씻을 필요도 없고 공간도 덜 차지하고 여러모로 편리합니다. 세척해서 건조하는 시간도 짧아서 하루에도 여러번 사용할 수 있어요. 이 비즈랩이 우리 집에서 비닐 랩과 봉투를 아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짙었던 왁스냄새도 조금씩 약해지고 익숙해지고 있어요. 한편 여러번 빨아 사용하면서 낡아지는 게 점점 아쉬워지고 있어요.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제가 산 것은 아마존에서 약 16달러, 1만7천원 정도에 팝니다) 몇 개 더 있으면 좋겠지만... 우선은 있는 것 아껴서 잘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죠.

이상 비즈랩 구매후기였어요~ :)

 





기존에는 펌프식 샴푸와 컨디셔너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특정 제품만을 선호해서 사용한 것은 아니고, 매년 명절 때마다 선물로 들어온 제품들을 유통기한 순서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침 플라스틱 용기의 마지막 린스를 모두 사용해, 플라스틱 포장이 없는 제품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제품이 러쉬(LUSH)의 헤어 컨디셔너바인데요. 비누처럼 따뜻한 물을 묻혀 머리에 직접 발라서 헹구거나 따뜻한 물에 일정 시간 녹여서 그 물로 머리를 감은 후 헹구면 되는 제품이에요. 가까운 백화점에 러쉬매장이 있어서 갔는데 거기에는 일회용 바형 제품만 팔아서 부득이하게 인터넷으로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아래 왼쪽 사진의 내용물이 뽁뽁이에 쌓여 도착했어요. 제가 산 제품은 종이봉투에 들어있는 헤어팩 하나인데, 에센셜 오일 카탈로그와 마스크팩이 함께 왔어요. 

이 헤어 컨디셔너바의 전성분을 보면 아래와 같아요. 구아하이드록시프록시프로필트라이모늄클로라이드, 타르색소와 같이 일부 논란이 되고 있는 성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머리 길이가 중간 정도라 샴푸 후 따뜻한 물을 묻혀 직접 도포했어요. 사용했을 때는 조금 퍽퍽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컨디셔너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사용 후 머리를 말리고 나니 부드러움이 오래 지속되고 이전 제품보다 머리카락이 덜 기름졌어요. 향은 다른 러쉬 제품보다 덜 강한 편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3번 사용했지만, 쓸수록 괜찮은 제품이라 생각됩니다. 

러쉬는 코스메틱 브랜드 가운데 특히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실천하는 기업 중 하나입니다. 최소한의 포장만을 사용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포장이 전혀 없는 네이키드 제품 라인을 갖추고 있죠. 러쉬의 제품 용기인 블랙 팟(Black Pot)은 내구성이 강하여 다용도로 사용되고 재활용이 되는 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 Plastic, PP)으로 제작되는데, 모든 용기는 재활용된 PP로 제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객이 용기를 매장에 가져오면 수거해서 다시 블랙 팟 용기로 제작해 사용한다고 합니다. 2013년부터 러쉬의 제품 용기인 블랙 팟 5개를 가져오면 프레쉬 마스크로 교환하는 '블랙팟의 환생'이라는 프로모션을 전개하고 있어요. 블랙 팟은 깨끗이 씻은 후 라벨까지 깔끔히 제거해서 가까운 매장으로 가져오면 된다고 합니다. 

러쉬의 포장용기 대부분은 재활용된 소재입니다. 선물상자, 선물태그, 포장지와 안내 책자 모두 100% 재활용된 용지와 천으로 만들었구요. 포장용 리본 또한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도 새로운 재료를 연구하고 있고 법률이 허가하는 한 리필 사용을 시행할 것이라고 해요. 공장에서 매장으로 제품 수송 시에도 재활용 용기를 사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러쉬 홈페이지

플라스틱은 재사용, 재활용만 잘 된다면 편리하고 효율적이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인 건 맞습니다. 플라스틱의 100% 재활용 달성을 위해서는 패키지의 단일화와 재활용 과정 단순화가 필요해요. 러쉬는 그런 측면에서 매우 잘하고 있는 사례죠. 블랙 팟은 투박하고 단순한 검정색의 용기이지만 러쉬만의 차별화된 상징물로 자리잡았죠. 화려한 플라스틱 패키지들 사이에서 오히려 독보적이고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갖추게되었습니다. 자체적인 PP 수거 방식도 재활용 비율을 높이는 좋은 조치에요. 재활용 업체의 선별, 분류 과정을 줄여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이고 동질의 PP를 대량으로 취급하면서 그만큼 용기의 재활용률을 높였죠.

최근에는 우리나라 브랜드들도 여러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애경산업 등은 올해 6월부터 내년까지 용기에 브랜드명을 직접 인쇄하는 방식을 제한하고 용기와 뚜껑 혹은 라벨의 재질을 동일하게 만들겠다고 밝힌바 있구요. 이니스프리는 다 쓴 자사 용기를 다양한 재활용 제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이 캠페인을 통해 모은 공병을 자재화해 소격동에 업사이클링 매장 ‘공병공간(空甁空間)’을 열었고 이 때 내외부 공간의 70% 를 23만 개의 이니스프리 공병을 분쇄해 만든 마감재로 장식해 이목을 끈 바 있습니다. 현재도 플라스틱과 유리 용기를 매장에 가져가면 1개당 500원(월 6회까지)씩 뷰티포인트로 적립해준다고 합니다. 

출처 : 이니스프리 홈페이지

우리를 예쁘게 건강하게 해준다는 화장품이 지구에 해가 된다면, 그 화장품은 진정 우리에게 이로운 것일까요. 소비자에게 편리하고 예쁜 용기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었다면, 환경에게 이로운 지도 한 번 더 생각하고 기업은 패키지를 제작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이상 패키지의 처리 비용을 소비자에게만 전과시키지 말길 바라구요. 


배달전성시대라고 하죠. 유명 쉐프의 요리도 주문만 하면 바로 도착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도 재료가 모두 손질되어 와서 레시피대로 조리만 하면 짠하고 완성되는 반조리 식품을 주문해보았어요. 처음 주문했던 제품이 생각보다 맛있었고 아이들도 너무 잘 먹어 다른 요리로 주문했는데, 그게 어제 저녁에 배달왔죠. 요리를 하기 전에, 패키징을 열다가 깜짝 놀랐어요. 종이 택배 상자 안에 비닐로 싼 스티로폼이 보냉제로 들어 있고, 그 안에 아이스팩이 무려 8개나 들어 있는 거였죠. 무려  8개........

며칠 전 도착했던 요리에는 3개가 들어있어서 올 여름에 유용하게 사용하고자 냉동고에 넣어놨는데, 8개는 너무 많고 저에게는 필요가 없어요. 다행히 어떻게 분리수거해야 하는 지가 아이스팩에도 스티로폼 보냉제에도 잘 명시되었습니다. 아이스팩은 비닐을 뜯지 말고 종량제쓰레기 봉투에 넣어서 배출하라고 되어 있네요. 그 말은 대부분 매립된다는 얘기입니다. 한 팩만 해도 꽤 무게가 나가는 데, 저희집도 냉동고에 넘쳐나는데 저렇게 버려지는 아이스팩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자꾸 액체괴물이 땅에서 올라오는 상상이 드는 거 있죠. ㅜㅜ

아이스팩의 겔은 99%의 물과 1%의 고흡수성폴리머로 만들어져요. 생분해성은 아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썩지 않고, 포장지채로 버려지는 아이스팩은 100년 정도 쓰레기산에 묻혀 있겠죠. 고흡수성폴리머 또한 플라스틱처럼 화석연료에서 추출합니다. 위해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해하다고 말하나 유해성을 제기한 연구가 있기도 해요. 2011년에는 인도의 한 공장에서 폴리아크릴산나트륨(고흡수성폴리머의 일종)을 들이마신 직원들에게서 폐병이 생긴 경우도 있구요. 동물 실험을 통해 장기적인 폴리아크릴산나트륨 노출이 동물의 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아이스팩을 대체할 친환경적인 보냉제를 찾는 것이겠죠.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아이스팩의 재사용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제 경험에 비춰볼 때, 몇년 전 잠깐 집으로 아침마다 배달되는 도시락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문 앞에 보냉 가방과 함께 녹은 아이스팩을 넣어 놓으면 배달원이 도시락과 함께 다시 얼린 아이스팩을 넣어 놓고 갔었어요. 제가 처리해야 할 아이스팩은 배달 기간이 끝나고 보냉팩에 남은 한 개의 아이스팩뿐이었어요. 아침마다 배달되던 녹즙도 같은 방법으로 업체에서 아이스팩을 재사용했어요. 일년 전 집으로 배송되는 녹색채소 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회사는 아이스팩 대신 생수를 얼려서 넣어줬구요.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아이스팩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배달요리 업체인 Blue Apron은 스티로폼 포장과 아이스팩을 회수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요. 경쟁사인 Hello Fresh도 패키지 분리수거 방법을 자세히 알리고, 택배 상자를 소비자들이 집에서 어떻게 재활용하는 지를 사례로 모아 보여주기도 하죠.(Hello Fresh의 Go Green 페이지 바로가기) 이 두 기업 모두 친환경 패키지 사용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아이스팩 또한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소금 성분의 것으로 바꿔 포장재만 비닐로 재활용하면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과다 포장과 쓰레기에 대한 민원이 다수 발생하자, 패키지와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서비스를 추가로 실시하게 된 것이죠.


Blue Apron의 패키지 재활용 정책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마켓컬리가 스티로폼박스와 아이스팩 수거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 또한 마켓컬리 이용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됐다고 해요.(참고 : Chan님 블로그 포스트)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아이스팩 처리 고충, 쓰레기 배출 문제 등이 언급되면서 업계 가운데 발빠르게 대처했습니다. 하지만 마켓컬리도 한 번 배송되었던 아이스팩 및 포장재를 물류센터로 재반입 및 재사용하지 않는 다는 원칙때문에, 수거된 아이스팩은 재사용하지 않고 전면 폐기한다고 해요. 

출처 : 마켓컬리 홈페이지 내 공지사항

집 앞까지 오는 요리 또는 식자재 서비스는 앞으로도 활황일거라고 합니다. 맛있는 요리를 집에서 쉽게 먹는다는 건 정말 매력적이죠. 하지만 업체들이 보낸 거대한 포장 안에 쌓여있는 제품은 더이상 친절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보다 친환경적인 노력를 하면 좋겠어요. 또 드는 생각은, 가정에서 나오는 아이스팩들을 모아 살균소독한 후 필요한 지역 가게에 전달하는 사회적 기업이 있으면 어떨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스팩 8개를 받은 후 사진과 함께 해당 업체 고객센터에 개선을 요구하는 글을 남겼어요. 오늘 아침에 도착한 고객센터의 답은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배달 포장이 과하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업체에 목소리를 내주세요.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모여 틀림 없이 바뀔겁니다. :) 


참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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