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옷을 수선했어요. 남편과 작은 아이의 구멍난 옷을 꼬매고, 매 양말과 옷을 고쳤죠.

큰 아이의 무릎 양말 작아진 게 두개 생겼어요. 양말목 공예를 좀 배우면서 생각난건데, 양말목 대신 진짜 양말로 공예를 해보면 어떨까해 잘라봤어요. 한 양말에서 나올 수 있는 고리 수가 제한적이고 무늬가 있는 것은 양말 뒤쪽이 지저분해 못 쓰겠더라구요. 그래도 색상별로 고리를 만들어 묶어두었습니다. 큰 아이의 반타이즈 2개와 헤진 내 양말 하나가 사용됐습니다. 양말의 발 부분은 오랜 때가 지워지지 않아 그 부분만 따로 모았어요. 창틀 청소할 때 한번 더 쓰고 버리려구요.

2024년의 첫 리페어데이였습니다.

 

캔 맥주의 분리배출은 명확하게 '캔류로 분리배출'입니다. 우리나라의 캔류 분리배출 비율은 80%로 매우 높은 편인데, 실제 알루미늄캔 재활용 비율은 30% 미만이라고 합니다.(출처 : 머니투데이 2020.5.25. 기사

오랜만에 마신 맥주 "파울라너 뮌히너 헬"의 뒷면 정보란을 우연하게 보게 됐습니다. 독일 뮌헨 지역에서 제조되어 유럽과 호주, 우리나라 등 세계 각지로 수출되기에, 이 제품의 뒷면에는 다양한 국가들의 필수 정보들이 총 망나되어 인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수입맥주를 마실 때 한 번쯤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이 표시는 무엇인지, 이 나라는 왜 이런 라벨을 사용하는 지...

오늘은 제가 마신 "파울라너 뮌히너 헬" 뒷면 정보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픽토그램 정보와 환경 정책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좌측 픽토그램을 살펴보면, "Münchener Bier" 표시와 PGI로고가 같이 있습니다. 이는 EU의 PGI 법에 의해 보호되는 독일에서 생산된 맥주라는 표시라고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위키피디아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참고 : 위키피디아 Münchener Bier)

 

PANT 1 KR 마크는 EUIPO(the European Union Intellectual Property Office)가 인증한 음료사업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무언가 재활용을 의미할 것 같은 표기였는데 단순히 허가받은 음료 및 주류 사업이라는 표시였어요.

 

이 로고는 많이 보셨을 겁니다. Triman 로고라고 불리는 이 마크는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분리배출 표기입니다. 무언가를 (쓰레기통에) 던지는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3개의 화살표는 분류 옵션을 상징하고 로고를 닫는 원형 화살표는 재활용 행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 기호는 2015년부터 모든 포장 및 재활용 가능한 제품에 의무화되었습니다. 포장에 이 로고가 보이면 재활용이 가능하며 분류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보통 이 로고는 아래와 같이 몇 개의 픽토그램과 같이 인쇄하는데, 좌측 캔 모양 픽토그램은 재질을 의미하고 우측 BAC DE TRI가 적힌 픽토그램은 모든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를 버리는 쓰레기통에 넣으라는 의미입니다. (참고 : GRUPPO MOURIZI 홈페이지)

덤으로 함께 알아보는 유럽의 대표 재활용 로고들입니다.

그린 도트(Green Dot)는 독일의 폐기물법 포장 조례 도입 이후 1991년 듀얼시스템-독일사(DSD)가 처음 도입한 로고입니다. 이 로고는 정확히 말하면 그린 도트 라이선스에 가입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린 도트 제도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폐기물법에 의해 회사가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를 수거해야 합니다.

 

왼쪽은 영국에서 사용하는 재활용 마크인데요, "Widely Recycled"는 영국 전역의 75% 이상이 수거하는 포장재에 적용합니다. 같은 "Widely Recycled" 표시지만 상단에 "Rinse(헹굼)" 표시가 있는 것도 있습니다. 식품 트레이와 같은 포장재는 다른 재활용품이 오염되지 않도록 헹구어서 배출한다는 의미입니다. 

우측 상단의 표시는 크로아티아의 빈용기 보증금 반환 픽토그램입니다. 이 표시가 있는 재활용품은 구매한 소매점에 가서 50LP로 교환할 수 있어요. 크로아티아는 플라스, 캔, 병 보증금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 중 하나입니다. 이런 보증금제도는 자국 제품에 한해 시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수입맥주에도 적용된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좌측은 2016년 제도 시행과 함께 배포된 홍보물인데, 초기에는 개수제한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개인당 하루 최대 80병으로 개수를 제한한다고 해요. 포장재는 꼭 깨끗하게 비우고, 눌리지 않은 상태로 반납해야 합니다. (참고 : komunalac-garesnica.hr)

 

 

 

그 밑에는 호주 정부의 정보인데요. "DrinkWise.org.au" 사이트에서 음주에 대한 정보를 얻으라는 메시지와 "Standard Drinks for Australia" 픽토그램이 있습니다. 픽토그램 안에는 1.9라는 숫자가 적혀있는데요, 호주에서 사용하는 이 Standard Drinks는 10g의 순수 알코올을 기준으로 그 것보다 알코올 도수가 얼마나 높은 지를 말해줍니다. 1.9는 기준보다 1.9배 알코올 도수가 높다는 뜻이지요. (참고 : http://www.health.gov.au)

세계 공통으로 임산부에게 음주는 위험하다는 경고 표시도 함께 게시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국가에서 임산부 위험 경고 메시지를 넣는데, 아래의 라벨은 호주와 뉴질랜드 정부가 권장하는 기준입니다. (참고 : http://www.foodstandards.gov.au)

하단에는 the 10c refund mark가 있는데요, 이 또한 호주 정부의 방침입니다. 호주는 재활용 가능한 모든 것에 이 환불제도 표시를 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어요.  Container Deposit Legislation(CDL)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은 1977년 남호주주에서 처음 시행한 후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테즈메니아주가 2024년에 마지막으로 이 제도를 시행한다고 하네요.

자료 조사를 하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어떤 주는 지자체에서 환불하는 곳을 지정해 관리하기도 했지만, 매우 다양한 기업들이 고객차원에서 편리하게 자원을 교환할 수 있도록 민간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우리나라 수퍼빈처럼 기계를 대여하는 방식으로 사업하는 곳도 있었고, 자체 멤버십 제도를 통해 모인 금액을 더 쉽게 관리할 수 있게 돕거나 사회환원 방식으로 유도하는 등 다양한 사업 아이템들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수입맥주캔 뒷면만 보아도 세계가 보이지 않나요? 세계화 속에서 우리는 먼 나라의 주류를 손쉽게 구매하는 현실에 살지만, 정보들을 읽고나니 한편으로 허탈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11월 7일 환경부는 1회용품 규제 조치를 철회했습니다. 환경부의 '1회용품 계도기간 종료에 따른 향후 관리 방안'에 따르면 종이컵은 사용 규제 품목에서 완전히 제외했고, 플라스틱 빨대는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으며, 비닐봉투는 과태료 부과를 철회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공병 보증금 반환제를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캔이나 플라스틱으로 확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최근 민간이나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자원을 배출하면 리워드 형태로 현금이나 상품권을 지급하는 형태가 확산되고 있지만요.

빈용기에 대해서는 보증금제도를 시행하는 곳이 많았지만, 일회용컵 보증금을 법으로 규정해 시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환경부의 철회 조치는 매우 퇴보하는 느낌을 주었지요. 시민의 자율적인 동참을 요구하는 캠페인은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몇년 남지 않은 지구 시간에 더욱 강경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에, 자꾸만 엉거주춤하는 우리나라 제도와 정치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오늘 시원한 맥주를 드신다면, 함께 환경 정보도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작은도서관은 올해 책친구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홍보용 배너판이 5월부터 11월까지 열일하였습니다. 시일이 지난 배너판은 처치하기 난감합니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배너의 재질은 패트지입니다. 잘 찢어지지 않고 색 표현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고, 필요에 따라 코팅을 하기도 하죠. 다 쓴 배너판은 플라스틱 재질이기 때문에 플라스틱 배출 같지만, 실제로는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되기 어렵기 때문에 종량제봉투로 배출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자주 발생하는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쓰고 버리기 참 아깝더라구요. 쓰임을 실용적으로 잇는 방법도 있지만, 추억이라는 감성으로도 이을 수 있습니다. 

저희 작은도서관에는 계절마다 메시지를 나누는 인테리어용 나무가 있어요. 연말연시를 맞이해 작은도서관 방문객들을 위해 소원을 오너먼트에 적어 나무에 다는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가위질해 둥글게 배너를 자르고 구멍을 뚫는 수고를 했지만, 취지에 공감하고 스티커와 펜으로 알록달록 멋지게 오너먼트를 만들어준 방문객분들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12월 27일 수요일, 한살림 성남용인지부 위례 지역모임으로 "논 이야기와 볏짚공예"에 참석했어요. 플라스틱 빗자루와 청소기가 보편화된 일상에서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흘깃 봤던 빗자루는 참 멋져보였죠. 볏짚을 만져볼 기회조차 없는 도시 사람에게, 이 빗자루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몰라요. 그리고 그걸 내 손으로 직접 만든다 하니 설레기까지 합니다. 

한살림 논살림위원회 활동가님께서 벼의 한살이와 논살림위원회가 가꾸는 논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어요. 아래는 "올개심니"라고 한 해 동안 벼농사를 지어 일찍 수확한 벼를 가장 먼저 조상에게 바치고 제사 지내는 풍속 할 때 사용하는 벼 이삭인데 풍요를 상징한다 합니다.

한 켠에 놓인 볏집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빗자루가 탄생할까 기대했는데, 저 볏짚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홰기라고 이삭이 달렸던 줄기만 뽑아서 쓰기 때문에 저 많은 양에서 빗자루에 쓰일 홰기는 매우 적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볏짚에서 뽑아낸 홰기가 저 정도에요. 미니 빗자루를 만들기위해서는 모인 홰기 양의 굵기가 500원 정도여야 한다는데, 정말 열심히 했음에도....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ㅜㅜ 논살림 위원회 활동가님들의 원조로 겨우 빗자루 만들 양을 마련합니다.

모은 홰기는 4등분한 후 이삭 부분의 키를 맞춰주는 작업을 해요. 물론 마지막에 다듬기 과정이 있지만, 이 때 잘해야 버려지는 양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홰기를 뽑아낸 볏짚은 버리느냐. 아니죠! 왼쪽 사진처럼 조리개를 만들 수도 있고 새끼를 꼬아 여러 곳에 이용할 수 있어요. 초가지붕, 짚신, 바구니, 마루 깔개, 망태기, 메주를 묶는 끈 등 활용도가 참 많답니다. 그 외에 겨울철 소의 여물이 되고, 삭혀 거름으로도 씁니다. 

인고의 과정을 거쳐 완성한 제 빗자루랍니다. 매듭이 보이지 않게 끈 묶는 법을 배워 완성했어요. 아래부터 조금씩 두껍게 끈을 감아야 예쁘게 됩니다. 빗자루처럼 이삭 부분이 펼쳐지려면 물을 뿌린 후 최대한 꺾듯 펼쳐줘야하는데 이 부분이 많이 어렵더라구요. 물을 뿌리기 때문에 지끈보다는 좀 더 질긴 마끈이나 면사가 작업하기 수월했어요. 마지막으로 빗자루 끝을 다듬어 주고 손잡이 남은 부분을 잘라 주면 완성됩니다.

각자의 개성을 담은 빗자루들끼리 모아 단체 사진을 찍었어요. 정성이 담긴 귀한 빗자루 소중히 잘 사용하겠습니다.

오늘 수업을 주도해주신 강사님이 "논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습지'이다"라고 수업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논 주변은 더운 여름에도 약 3~5도 정도 온도가 낮다고 합니다. 논은 훌륭한 탄소 저장고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고마운 존재죠. 그리고 다양한 곤충들과 생명이 사는 우주이기도 하구요. 그러한 논이 비닐하우스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비닐하우스는 기본적으로 평평한 바닥에 세워야 하는데, 많은 농가가 수익창출을 위해 논을 없애고 비닐하우스를 세우는 추세라고 해요. 그만큼 지구 온도를 조절하는 습지역할의 논이 사라지고, 그 속의 생명들도 사라지고 있구요. 한철 사용한 비닐하우스는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되고, 이를 소각하면 그만큼의 이산화탄소와 유해물질이 발생하게 됩니다. 

단순히 쌀을 만드는 수단으로서 벼가 아닌, 지구와 호흡하며 사람과 생명에게 이로운 우리 조상들의 벼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사님이 인용하신 주자의 말이 매우 깊이 와닿았습니다.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

베어내자니 모두가 풀이고 두고보자니 모두가 꽃이다.

몇 개월 지났지만 기억에 남는 책이 <리페어 컬처>였어요. 표지에는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이라고 적혀있죠.

그 책이 주는 깨달음 중 하나는 우리 시대가 버리기에 너무나 익숙해졌다는 자각과 소비 만능 시대에서 고쳐쓰기가 오히려 마이너가 되었다는 거였어요.

얼마 전 지인에게 들었던 얘기인데, 몇 년 전 우산 고쳐쓰기가 캠페인처럼 확산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작은 나이 많으신 우산 고치시는 할아버지로부터 파급된 거였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우산 고치는 교육을 들었음에도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명맥이 끊겼다 하더라고요. 그만큼 세상은 고치는 문화에 익숙지 않고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야 서울시를 비롯해 조금씩 리페어 컬처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리페어 컬처라는 단어가 울림이 되었듯이 생활 속에서 조금씩 실천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우리 집도 리페어 데이를 가져보자 마음먹었지요. 뭐, 대단한 건 아니에요. 바쁜 일상 속에서 고장 나거나 흠이난 것이 있다면 바로 버리지 않고 리페어 데이에 고치기를 시도해보자는 거입니다.

잘 아는 분야는 직접 고치고, 모르는 분야는 고치는 곳을 찾아야 하는 수고로움이 발생하지만 해결책을 찾는 보람이 쏠쏠합니다.

이렇게 데이를 지정하기 전에는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에요. 남편은 당근 마켓에서 산 중고자전거가 얼마 타지 않았는데 페달이 망가지자 페달만 사서 고쳐 타고 있고요. 소형 전자제품들이 고장 나면 바로 버리지 않고 A/S를 맡기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더 부지런히 고쳐쓰자는 다짐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서두가 길어졌지만, 오늘의 고쳐쓰기 실천을 기록합니다. 끊어진 의자 쿠션 고리를 바느질로 고쳤답니다.

샀을 때보다도 훨씬 튼튼하게 여러 번 꼬매 박은 의자 쿠션이 오래오래 쓰임을 다하길 기대합니다.

#노모어플라스틱 #리페어컬처 #리페어데이 #고쳐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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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4. 리페어데이  (0) 2024.01.15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죠. 올해는 코로나-19 이슈가 있어 규모가 축소된 것 같지만 많은 기업들이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저 또한 전단지에서 본 행사 하나가 눈에 띄어 참여했죠.

PP소재 용기 5점 이상을 기부하면 플라스틱 화분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기부 참여 리워드로 친환경 타이벡 소재 에코백을 준다는 것이었어요. 에코백이면 에코백이지 "친환경 타이벡 소재"라고 하니 호기심이 생겼고, 마침 모아 둔 플레이도우 통들이 PP 재질이라 가지고 갔어요. (여담이지만, 모아둔 약통도 PP소재라 같이 챙겨갔는데 이건 용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퇴짜 맞았답니다. ㅜㅜ) 리워드로 받은 "친환경 타이벡 소재 에코백"은 아래와 같았어요.

 

 

알고보니 2019년 이니스프리에서 주관한 행사에서 제공받았던 에코백과 같은 소재였고, 이제야 이 소재의 이름이 타이벡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이 소재의 에코백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았고 불투명하고 두꺼운 비닐봉투 느낌이었거든요. 매끈한 듯 거칠거리는 질감도 제 취향은 아니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유행처럼 이 소재를 사용한 소비재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겁니다. 특히 "친환경"을 타이틀로 건 행사에서요. 패션잡화 쪽에서도 친환경을 표방한 제품라인을 선보이면서 이 소재를 적극 이용하는 것을 보았어요.

거슬러 올라 생각해보니 제가 경험한 최초의 타이벡은 놀이공원 입장 시 팔목에 채워주는 팔찌형 입장권이었어요. 종이처럼 생긴 것이 더운 여름에도 축축해지지 않았고 다 놀고 난 후 벗겨내기도 쉽지 않았죠. 그 정도로만 사용되었던 소재가 친환경으로 각광받다니 세상이 변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타이벡은 정말 친환경 소재일까?

타이벡은 어떤 소재?

타이벡은 한마디로 특수 부직포 소재입니다. 타이벡은 표기할 때 꼭 Tyvek®로 표기하는데 듀폰(DuPont™)사에서 특허를 낸 합성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종이같이 생겼지만 고밀도 폴리에틸렌 섬유로 별도의 화학물질 첨가 없이, 오직 열과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신소재 부직포라고 합니다.

타이벡은 종이 같은 질감을 주지만 잘 찢어지지 않고 방수 성질을 가지고 있어 보호복, 의료용 포장재 등에 많이 이용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용 보호복으로도 이 소재를 이용해 많이 제작되고 있다고 합니다. 내구성도 높고 부드러운 재질이라 생활잡화의 원단으로도 각광받고 있어요. 일반 부직포나 종이보다도 먼지가 적게 나오기 때문에 침구류에도 사용된다고 해요. (출처 : 듀폰 타이벡 블로그)

타이벡이 친환경 소재로 불리는 이유는?

타이벡이 친환경으로 불리는 첫번째 이유는 화학물질 첨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레이온 등 많은 플라스틱 섬유들이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첨가하여 만들지만 이 소재는 오직 열과 압력으로만 제작된다고 합니다. 두번째 이유는 먼지 발생이 적어 건강하다는 거죠. 방수, 방습, 멸균 등의 효과도 생활과 산업 곳곳에서 대안제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튼튼하여 오래 쓰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고 합니다. 일반 비닐이나 종이보다 내구성이 좋아 반복해 사용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00% HDPE(폴리에틸렌)으로만 제작되었기 때문에 사용한 후에 HDPE 소재만 따로 모아 다시 자원으로 활용 가능하다고 합니다.

현실에서는 과연...

처음 '친환경 소재 타이벡'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소재가 HDPE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심 재사용된 HDPE 소재이길 바랐습니다. 비닐봉투로 상징화된 HDPE는 가벼운 특징 상 플라스틱으로 모아 재활용되기 어렵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비닐"로 따로 분리배출하고 있으며 이렇게 모인 비닐은 대부분 난방연료로 사용된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게 일회용으로 버려지는 HDPE를 모아 더 튼튼한 소재의 천으로 만들고 사용처를 넓힌 리사이클 소재라면 '친환경'에 걸맞는 소재임을 백번도 인정했을 거에요. 하지만 자료를 찾아봐도 과거 그러한 캠페인을 한 흔적이 있는 듯 보였지만, 현재 판매되고 있는 타이벡 소재가 리사이클링 소재는 아님을 알게됐죠.

더군다가 많은 제로웨이스트 블로거들이 타이벡의 '친환경' 타이틀에 저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00% 재활용 가능한 소재라 하더라도 타이벡 소재만 모을 수 있는 현실적 상황이 따라와주지 않는다면 이 소재는 재활용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참고 : Loving the Earth? Avoid Tyvek® Wristbands and Other Tips for a Climate-Friendly Event)

결국 타이벡도 플라스틱입니다. 경량성, 방수성, 내구성 모두 기준 HDPE 소재의 공통된 특징일 뿐이죠. 그래서 저는 듀폰사의 타이벡 소재를 '친환경'으로 홍보하는 것이 불편합니다. 타이벡 소재 에코백도 여느 비닐봉투와 마찬가지로 바다에 버려지면 가짜 해파리처럼 둥둥 떠다니고, 땅에 버려지면 수백년 동안 썩지 않아요.

이 소재를 만든 듀폰사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하지만 "친환경"이라는 말에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시는 많은 분들이 속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듀폰사와 테프론

이 타이벡을 만든 듀폰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최근에 영화화된 적이 있습니다. 배우이자 환경 운동가인 마크 러팔로가 제작/주연을 한 <다크워터스>가 그 영화인데요. 눌러붙지 않는 프라이펜의 대명사인 테팔 프라이펜을 탄생하게 만든 테프론 프라이펜의 유해성을 파헤친 실화 바탕 영화죠.

과불화옥탄산(PFOA, PerFluoro Octanoic Acid), C8로 알려진 이 인공 화합물은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팬의 코팅제 '테프론' 속 화학물질입니다. 듀폰사는 이를 사용한 자사 제품이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다하고 지속적으로 사용했으며 폐기물을 무단 방류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마을 주민과 공장 직원들은 심각한 중증 질환을 앓게되고, 기형아 출산도 이어지게 됩니다. 듀폰사는 이 사실을 40년 넘게 은폐해왔습니다. 2017년 미국 법정에서 듀폰사가 6억7100만 달러(약 8천억원) 배상을 선고 받으며 세상에 알려지게 됐죠.  

이 PFOA 독성에 대한 영화 속 대화 중 하나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만약 이걸 마신다면요?" (빌럿)
"마치 타이어를 삼키면 어떠냐고 묻는 셈인데, 그러고 싶어요?" (화학전문가)

(참고 : 중앙일보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팬의 배신…"생명체 99% 오염시켰다">)

 다크워터스 영화소개 바로가기 >>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펜으로 유명한 브랜드 테팔은 이 테프론 프라이팬에서 시작합니다. 낚시 도구에 사용했던 테프론 코팅을 주방 프라이팬에 사용해본 것을 계기로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을 생산해 판매하게 되고 명실상부한 주방도구로서의 입지를 굳혔죠. (출처 : 테팔의 역사)

https://youtu.be/HKDYck7gKE8

당시 듀폰사는 260도 이상 가열하면 테프론에서 해로운 물질이 나올 수 있으나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260도 이상 가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테팔 프라이펜으로 알려진 테프론 코팅 프라이펜은 빈 상태로 2분만 가열해도 380~390도까지 이르고 유해한 가스 입자를 배출한다고 하네요.  

'무해함'과 '친환경'의 온도 차이

우리는 경험으로 화학기업의 '무해'와 '친환경'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 다르다는 것을 그동안 많이 체험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이슈가 그렇고 일회용 생리대가 그렇고, 이 테프론 프라이펜도 유사한 이슈라고 생각됩니다.

타이벡 소재가 테프론 소재처럼 유해하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여타 플라스틱보다 화학물질을 덜 사용했으니 다른 플라스틱 소재보다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이 아마도 맞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에코백을 만드는 데 있어서 굳이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 기준에서는 오래 사용해도 결국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되는 이 소재보다는 손으로 대강 짠 면실 에코백이 '친환경'이라고 보여집니다.

기업의 '친환경'이라는 수식어가 제로웨이스트의 기준과 상이함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한다면, 지구에 덜 해가되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친환경' 수식어를 꼼꼼이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상 노모어였습니다. :)

 

 

 

 

 

 

 

며칠 전 눈에 띄는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국내 최초 '녹색특화매장'이 시범운영된다는 뉴스였는데요, 올가홀푸드 방이점이 제 1호 매장으로 지정되었는 내용이었어요. '녹색특화매장'은 환경부가 운영하는 '녹색매장'을 확장·발전시킨 개념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녹색소비문화 확산을 위해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한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매장이라고 합니다.

 

올가 방이점 '친환경 생활용품 존'

(서울=연합뉴스) 올가홀푸드가 19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가 방이점에서 국내 최초 '녹색특화매장' 시범운영 기념식을 가졌다고 이날 밝혔다. '녹색특화매장'은 환경부가 운영하는 '녹색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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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에 기념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문을 연 올가홀푸드 방이점을 다녀왔습니다. 올가홀푸드 방이점은 전국 올가 매장 중 가장 크다고 해요. 몇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고, 당시 예쁜 외관과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녹색특화매장으로 지정되면서 3R(Refill, Recycle, Reduce)의 제로웨이스트 철학을 반영해 리뉴얼되었다고 하기에 매우 반가웠지요. 3R은 Refill(필요한 만큼만 리필 구매), Recycle(100%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패키지 만들기), Reduce(플라스틱 사용량 감소)를 뜻합니다. 1년 전부터 알맹시장을 필두로 전국 곳곳에 리필샵이 자생하고 있는 가운데 친환경 먹거리 매장 중 선두 그룹인 올가에서 리필 스테이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궁금했습니다. 어떤 제품을, 어떤 형태로, 다양하게 운영하는 지. 그래서 주말을 맞이해 리필 용기들을 한아름 가지고 매장을 방문했습니다. 

가장 먼저 무포장 야채코너가 눈에 뜁니다. 파프리카, 애호박, 오이, 무 등 다양한 유기농 및 친환경 인증 야채와 채소들이 예쁘게 담겨있었어요. 특이한 것은 각 농산물 가격표 옆의 인증서였는데요. 글자가 작아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유기농 또는 친환경 인증 내용을 담은 것 같았습니다. 뭔가 건강한 신뢰의 아우라가 느껴졌죠.

마침 당근을 사야하기에 하나를 프로듀스백에 담습니다. 셀프 저울 이용방법에는 용기를 올려놓고 영점을 맞추라는 내용이 가장 먼저 적혀있었어요. 알아서 척척 잘하지만, 혹시나 어려워하지 않을까 직원분이 달려와 주십니다. :)

오른쪽 과일 코너에도 포장이 안된 과일들이 바구니에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어요. 배의 경우 스티로폼 재질 보호재가 끼워져 있었지만, 필요한 만큼만 담아서 살 수 있으니 좋았습니다. 아직 프로듀스백이나 개인 용기 이용이 낯설기에 군데군데 종이봉투를 둔 것이 눈에 띄었어요. 롤비닐보다 보기는 좋았지만, 이마저도 사용하지 않도록 프로듀스백이 일상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패키지로 판매하는 과일의 경우 아래와 같은 종이박스에 담았는데 어찌나 예쁘던지. 비닐이 아니어도 내용물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으니 분리배출도 쉽고 플라스틱 쓰레기도 발생시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비닐 덮개 없는 과일 상자 포장과 더불어 패키지에 대해 신경 쓴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건조 멸치의 경우에는 곡물 껍질을 원료로 만든 포장재를 사용하고 있었구요. 생선과 고기를 담는 트레이는 옥수수 전분으로, 비닐은 슈가랩을 이용하고 있었어요. 풀잎 모양의 Zero Waste 표시가 있는 제품은 이러한 노력이 담긴 올가만의 제품입니다.

 

 

그리고 가장 기대했던 리필 스테이션으로 갔어요. 이곳에는 '에코스토어' 브랜드 제품들이 입점되어 있는데, 리필 스테이션에는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 2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저와는 친숙한 브랜드가 아니지만, 지인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 온 친환경 세제 브랜드로 특히 젖병세정제가 아기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반은 리필하는 공간, 반은 에코스토어 완제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자주 방문한 지역 리필샵에는  주방세제, 구연산, 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 소프넛 등이 리필 가능하도록 판매하고 있기에, 다소 부족한 느낌은 들었어요. 리필을 화두에 내세운 만큼 무언가 새로운 대안이 있길 바랐나봐요. 가령 샴푸나 트리트먼트 등 욕실제품도 리필이 가능한...

리필샵을 이용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능숙하게 저울을 만지고 가져온 빈 통에 세제를 담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세제가 너무 찔끔찔끔 나오는 거에요. 담당하시는 직원분이 달려오셔서 여러가지 긴급조치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10분 동안 겨우 350g 담았어요. 아래 오른쪽 사진처럼요. 

이건 아니다 싶어, 직원분께 수도꼭지를 교체하거나 통 내부 막힌 부분을 뚫어야겠다 말씀 드렸고, 수도꼭지 아래에 리필통을 놓을 수 있는 받침대가 있어야지 무겁게 세제가 담길 동안 고객이 계속 들고 있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전달했어요.  더이상 리필은 포기. 다음을 기약하며 나왔습니다.

올가 방이점만의 독특한 점 하나는 나물 반찬 코너입니다. 제철 나물로 만든 건강한 반찬을 담아서 구매할 수 있는데, 개인 용기로 반찬을 리필하면 할인 혜택도 준다고 하니 이용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 경우 과거 대형마트 반찬 코너에서 개인 용기를 내밀었다가, 위생과 안전 문제로 담아줄 수 없다고 거절 당한 경험이 있기에 이런 적극적인 용기 사용 안내문이 정말 반갑더라구요.

이 매장의 다소 아쉬운 점은 친환경 기성품 코너가 작은 거에요. 정부가 인정한 친환경 제품들만 모아놓은 코너가 있는데, 이러한 기성품들은 한살림이나 생협이 훨씬 종류가 많고 다양한 것 같아요. 

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친환경 인증이라는 제도하에 물티슈, 일회용 식기들, 플라스틱 트레이에 담긴 소량의 제품들이 메인에 진열되는 것은 제로웨이스트 방향성에는 맞지 않다고 봅니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생분해 소재 대안 수세미는 있으나 천연 수세미는 없고. 인증 받은 물티슈는 있지만 소창 행주나 다회용 대안품은 없었어요. 

제로웨이스트를 평소 실천하시는 분들이 운영하는 제로웨이스트샵은 진정성은 가득하지만 규모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유통업체의 제로웨이스트샵은 규모는 있으나 생활 속에서 부딪히고 깨닫는 세세한 고민과 철학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100%는 무리더라도 매장의 50% 이상이 플라스틱이나 비닐, 과대포장 없이 진열되어 있고, 제로웨이스트 생활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 매장을 기대한 것 같아요. 매장을 나오면서 올가의 도전이 소규모로 분투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샵 운영자분들과 맥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한 리필스테이션을 찾는 고객들이 훨씬 많아져, 트레이에 담긴 세제보다 리필해서 쓰는 세제가 더 인기가 있고 일상화되는 바람을 해봅니다. 용기를 가져오는 용기가 일상화되고, 트레이나 포장재는 선택 중 최후의 선택이 되기를 또한 기대하구요.

이 매장을 1호로 전국에 제로웨이스트 고민을 진정하게 담은 녹색특화매장들이 많이 생기고 번창하면 좋겠습니다. 올가 방이점의 철학이 담긴 현수막 사진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나를 위해, 지구를 위해.

 

무척 더운 토요일이었어요. 두 달 전쯤 사전 예약을 했던 비 존슨 초청 강연이 열리는 날이었죠. 신반포역 근처의 덜위치 컬리지에 도착. 이 곳은 작은 영국이더라구요. 외국인학교라 어느 정도 분위기는 예상했지만 다양한 인종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영어... 참 이국적인 느낌이었죠. 이날은 본교 400주년 기념일인 동시에 서초구에서 개최하는 첫 세계인의 날이라고 해요. 이 작은 영국 내부는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입구에서 간단히 등록을 하고 들어갔더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나는 쓰레기없이 살기로 했다' 책 판매부스였어요. 2013년도에 출간해 절판되었다가 비 존슨 내한 기념으로 재인쇄하게 됐는데요. 강연 전에 책을 읽어야지 하고 주변 도서관에 알아봤는데 결국 제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아쉬웠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이렇게 아주 많이 만나네요. 책은 미리미리 구매하기!

행사 소개 팜플렛에 제로웨이스트 마켓이 함께 열린다고 적혀 있어 찾아갑니다. 많은 부스가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대표적인 제로웨이스트 브랜드는 모두 있었어요. '매거진 쓸', '더 피커', '예고은', '다시쓰는 그랩', 'Gachi Soap', 'FRUTO', 'WasteUpso', 'Fresh Bubble' 등이 있었어요. 공기정화 식물도 함께 팔고 있었고, 'WasteUpso'는 포장지 없는 컨셉 스토어를 지향하듯이 일부 제품들에 한해 가져온 용기에 담아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어요. 모든 부스에서 지갑을 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꽁뜨' 매대에서 핸드메이드 생리대 책을 한권 사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Fresh Bubble' 부스에서는 소프넛 사용에 대해 실용적인 조언을 얻고, 'Gachi Soap' 부스에서는 샘플 비누를 얻었습니다. 이런 셀러들이 있어 참 고맙고 다행이에요. 좋은 제품들이 더 널리 사용되기를 살포시 기대해봅니다.

그 와중에 비 존슨이 친히 제로웨이스트 마켓을 방문해주셨어요. 각 부스를 돌며 같이 사진도 찍고 판매되는 물건도 구경하고 그랬죠. 부스의 사람들 눈이 반짝였어요. 영웅을 직접 만나는 기분으로... 저 또한 어부지리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비 존슨을 만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네요.

마켓이 그리 크진 않았기에 한 바퀴 천천히 돌아도 시간이 꽤 많이 남았어요. 4층 강연장으로 이동해 출석 인증 도장 손등에 쾅 찍고 대기. 점점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2시부터 입장 시작. 강연 전까지 매거진 쓸 광고와 지상파 방송의 플라스틱 관련 다큐멘터리 클립이 상영됩니다. 일찍 강연장에 들어온 저는 내빈석 다음으로 가장 앞 자리에 앉을 수 있었어요. 

2시 30분에 식이 시작됩니다. 시작과 함께 비 존슨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와 달리, 제1회 서초구 세계인의 날 기념식이 먼저 시작됩니다. 국민의례와 내빈 소개, 서초구청장과 덜위치컬리지학장의 인삿말이 이어집니다. 비 존슨의 강연으로 오롯이 한 시간이 채워지길 기대했는데, 10분으로 예정되었던 개회식은 점점 더 길어지네요. 덜위치컬리지 학생들의 환경관련 메시지가 끝나자 비로소 강연이 시작됩니다. 

비 존슨은 하얀 바지에 하얀 티, 그위에 멜빵을 한 의상에 높은 굽의 샌들을 신고 나왔어요. 한 손에는 텀블러, 한 손에는 하얀 면포를 들고 무대에 섰죠. 면포 안에는 2018년 그녀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 전부를 담은 유리병이 있었어요. 후에 소개하기를 그녀의 의상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웃들 중 한 가지 조합이고, 샌들은 얼마전 중고 시장에서 구입한 거라고 합니다.

강연 사진은 아래 한 장이 전부에요. 그녀가 요청했죠. 이 소중한 순간을 사진 찍는 데 허비하지 말고 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고. 아래 사진은 강연 시작 직전 무대 세팅을 점검하는 비 존슨이랍니다.

강연 내용은 책의 축약 버전입니다. 책에서 강조했던 5R(Refuse, Reduce, Reuse, Recycle, Rot)을 실제 경험담과 함께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그녀의 외모 콤플렉스인 얇은 입술을 보완하기 위한 플라스틱 없는 화장품으로 쐐기풀류를 직접 입술에 발라 본 이야기, 화장지 대신 이끼류를 모아 사용하려 했던 이야기, 식초로 머리를 헹구는 노푸 생활을 6개월 정도 하다가 남편이 더 이상 냄새를 못참겠다하여 그만 두게 된 이야기 등 현재의 그녀가 있기까지 그녀가 겪었던 엉뚱한 듯한 경험담이 청중들을 즐겁게 합니다. 

주방에서, 침실에서, 아이들방에서, 옷방에서, 창고에서 What If(만약에)를 염두에 두고 남겼던 물건들을 과감히 포기하니 쓸레기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질도 유쾌해졌다고 말합니다. 공간에 돌보던 시간과 노력을 가족과 취미, 추억에 투자하게 됐다는 얘기도 했죠. 또한 그녀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유연함'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유연함이란 실천에는 단 한가지만의 해법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의 유연함입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버터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는 것은 좋은 경험이긴 하나 오히려 생활을 낭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하죠. 노동의 고통을 줄이고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유연함이죠. 이는 제로웨이스트 이슈와 관련해 상대방과의 대화에서도 발현됩니다. 환경과 실천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어요. 이견을 존중하되 본인만의 신조를 유지하는 것, 이것도 바람직한 유연함이라 할 수 있죠.

강연 내내 그녀의 프랑스 악센트가 섞인 유머에 함께 웃다가, 핵심내용에 대해서는 같이 진지해졌죠. 그녀는 깐깐했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녀의 미소는 많은 것을 경험해 본 사람만 보일 수 있는 거였죠. 직접 청중의 질문에 답하는 Q&A 시간에 그녀는 더욱 돋보였습니다. 누군가 학교에서의 제로웨이스트 교육 방법에 대해 물었어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죠.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가와 별개로 어른들의 행동은 그런 교육과 이질적일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는 가를 논의하기 전에 어른이 먼저 실천해야 한다(의역한 것이라 내용에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제 고민 중 하나인 학용품에 대한 조언도 있었습니다. 매 학기 구매해야 하는 학용품 리스트가 많은데, 이 학용품들은 1년만 사용되고 버려집니다. 어른들은 아주 쉽게 매장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사고, 다음 해에 또 사죠. 매년 준비해야 할 학용품이 같다면 1학년 때부터 교육기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학용품을 사도록 학교에서 유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클리어파일의 경우 튼튼한 종이로 끼워 쓸 수 있거나 금속으로 된 제품도 있거든요. 저 또한 아이의 유치원 3년 내내 준비해야 했던 싸인펜과 크레파스, 색연필 등이 모두 플라스틱 재질이라 마음이 몹시 불편했던 기억이 있어 매우 공감했습니다.

그녀는 본인의 제로웨이스트 홈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환경보호'라는 키워드에 노출되었고, 이 시대에 '환경'은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렸죠. 비 존슨은 본인의 강연에서 '환경'이라는 단어는 두 번 정도밖에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요. 가족과의 행복, 건강함, 삶의 질 상승 등의 측면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이야기 했기 때문에 더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어쩜 이렇게 멋있을 수 있을까요. 하나의 확고한 실천을 만들기 위해서 수십번, 수백번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그녀의 노고를 존경합니다. 그간의 실천들을 5R과 라이프스타일 측면에서 요약 설명할 수 있다는 건 반복적인 경험과 엄청난 시행착오, 강한 의지가 아니면 실현되기 힘들었을거에요.

이렇게 본 행사가 끝나고 1층 사인회 현장으로 갑니다. 제가 좀 눈치가 빠른 편이어서 이 곳에서 하겠거니 하고 서있는데 어느새 그게 줄이 되어버렸어요. 어떨결에 가장 처음으로 비 존슨의 사인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도 비 존슨의 멋짐이 부각되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주최측은 여느 사인회와 마찬가지로 싸인용 네임펜을 준비해 놓았어요. 비 존슨은 자신이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재사용 가능한 펜을 꺼내며 그 일회용 펜을 사양했지요.

전 책 두 권을 준비했어요. 하나는 개인 소장용으로, 하나는 아파트 내 도서관에 기증할 마음에서였죠. 각 책에 'to' 다음 뭐라 적어달라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두 권의 책을 내미는 순간 비 존슨은 이렇게 말했어요. "전 제 책이 보관용이 되길 원하지 않고 함께 나누길 바란다. 그래서 개인 이름을 사인에 넣지 않는다". 제가 참 생각이 짧았던 것을 느꼈죠. 그녀는 제 이름 대신에 함께 나누자는 메시지를 적어줬어요. 강연 끝나고까지 절 감동시키네요.

그녀는 쓰레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실천하였고, 그렇게 비우는 동안 행복을 얻었죠. 이 강연은 제로웨이스트라는 행보에 발을 들인 지 이제 막 1년이 되어가는 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유연성'이란 키워드는 해법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조금씩 지쳐가는 저에게 위로를 주었고, '나눔'이란 키워드는 앞으로 실천해가는 참 좋은 아이디어가 되었죠.

고마워요, 비 존슨! 살아있는 영감이 되어주어서.

오랫동안 블로그를 쉬었습니다. 아이들 방학 핑계로 바빠졌다가, 몇 가지 일 벌린 것들이 생겨서 정신 없다가, 문득 고개들어 보니 꽃이 피네요. 그렇다고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고 대안을 찾는 일은 소홀히 한 건 아니에요.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는 것은 트위터나 인스타그램과 달리 시간과 정성이 몇 배는 들기에 그런 짬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죠. 이제 생활이 조금 안정되어 밀린 포스트들을 하나씩 풀어보고자 합니다.

그 사이 블로그를 오픈한 지 일년이 지났어요. 일년을 실천하면서 든 생각 중 하나는, 누구나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착하고 좋은 상품을 많이 알리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는 것이었죠. 유럽, 영국, 미국, 호주, 대만 등 우리보다 제로웨이스트나 플라스틱 대안에 대한 고민이 많은 나라들에서는 대안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에 늦게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시작하더라도 보다 쉽게 대안을 찾을 수 있어요. 구매가 이루어져야 시장이 만들어지고, 시장이 활성화되어야 실천가들의 선택폭이 넓어지고, 그래야 정말 일상 생활에서 Non Plastic 제품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형마트에서 면생리대를 이제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몇년 후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Non Plastic 제품들이 마트에 가득하길 바라봅니다.   

그래서 올해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이제 막 제로웨이스트 또는 No More Plastic 실천을 시작하는 분들을 위해 좋은 제품들을 사용해보고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어요. 제 경우, No More Plastic 실천을 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썼던 플라스틱 물건들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대안체들로 한순간에 채워버리는 선택을 한 것도 아니고, 아무리 플라스틱이라 해도 그 역할과 소명을 다한 후 대체제를 신중하게 고르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한번에 드리지는 못합니다. 구매하기 전에 1) 진짜 필요한 건지, 2) 사지 않고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지, 3) 만들어 쓸 수는 없는 지 따진 후에 구매한다는 제 나름의 기준이 있기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보다는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제품들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 게 제 마음입니다. 신중하고 느리게 선택한 만큼 솔직하고 자세하게 그 후기를 전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은 이제야 올리지만... 4월에 소개드리려 했던 제품은 아임낫띵의 황마로 만든 낙엽 수세미입니다.

앞 서 두번의 포스트를 통해 일명 수세미실이라 불리는 아크릴사, 폴리에스테르사로 수세미를 뜨는 것이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그 대안으로 전 수세미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어요. 일년 전 산 마끈으로 만든 수세미는 지인들 선물로 대부분 나가고 제 건 두 벌반 남겼는데, 마지막 마 수세미도 끈이 끊어져 버리게 됐고, 시어머님 친구분이 주신 수세미를 대신 사용하고 있던 차였죠.

이 제품을 처음 알게된 것은 인스타그램에서였어요. 어느날 낙엽 모양의 수세미를 보게 됐는데, 그 브랜드 이름이 '아임낫띵'이래요. 이 센치한 이름이 낙엽 수세미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거에요. 정말로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낙엽 가득한 가을 어느 날이 떠올랐죠. 마침 황마 수세미도 없고 그 패턴도 궁금하여 낙엽수세미 DIY 패키지를 구매하게 됐어요.

판매처가 저희 집에서 두 정거장 거리이기에 배송비도 아끼고 탄소발자국도 줄일 겸 직접 받겠다했는데, 다른 일정으로 차 끌고 나왔다가 도착지점에서 주차를 못해 헤매게 돼 오히려 미세먼지발생 주범자가 되었다는.

택배 배송할 때는 종이상자에 담아주시는데, 직접 온 전 종이봉투에 담아주셨어요. 포장이 군더더기 없지요. 포장 포인트인 유칼립투스잎은 직접 키운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받아온 즉시 낙엽 수세미 하나를 완성합니다. 보통 마끈 한 타래로 열 개 정도 뜬다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코바늘이 굵었던 건지 전 15개의 수세미를 떴어요. 마끈이 거칠다보니 좀 손이 아픈데, 마끈 한 타래 다 쓰는데 이틀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동봉된 가이드 외에도 동영상을 공유해 주셔서 코바늘 초보자도 쉽게 뜰 수 있을 거에요. 

15개 중 잘 만든 것 같은 8개는 종이봉투를 재활용해 네임택을 만들어 달고 친구들에게 선물했어요. 그리고 남은 7개는 두고두고 쓰기 위해 잘 쟁여두었죠.

이제 설겆이 할 시간. 처음 이 수세미를 사용할 때는 주방비누를 썼기 때문에 비누를 비벼 거품을 내 사용했어요. 거품이 잘 생깁니다. 면사 수세미보다 지속력도 길구요. 그래서 예전에는 마수세미를 헹굼용으로 썼는데 이 때부터 거품용으로 사용하게 됐어요. 주방비누에서 소프넛으로 갈아탄 후에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데 설겆이 결과에 꽤 만족스럽습니다.

뜨개질한 수세미는 내구성이 좋아요. 제가 헹굼용으로 떴던 마수세미보다 조직이 촘촘해서 잘 끊어지지도 않습니다. 첫 수세미를 3월 말부터 사용했는데 아직까지 튼튼하게 잘 사용하고 있어요. 

촘촘한 만큼 두께감이 있어서 잘 마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마소재는 건조력도 좋네요.  제가 뜬 면사수세미가 더 얇은데 마수세미가 훨씬 더 빨리 마릅니다.

요즘 전, 소프넛 우린 물에 이 마수세미를 적셔 설겆이를 하고 면사 수세미로 헹굽니다. 설겆이 후에는 꼭 짜서 걸어두고, 3주에 한번 꼴로 삶아주고 있어요. 색상 때문인지, 소재 때문인지 면사 수세미보다도 때가 덜 끼고 잘 지워지는 것 같습니다.  

남은 수세미는 올 일년 풍족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 낙엽수세미가 떨어질 때쯤, 마끈 한 타래를 사서 그 후 일년을 사용할 낙엽수세미를 뜨고 있겠죠. 이렇게 좋은 대안을 가지고 있고, 그 방법을 안다는 건 참 마음을 든든하게 만듭니다.

참고로 말씀드릴 것은, 만약 직접 낙엽수세미를 뜨신다면 고리부분을 본인이 갖고 있는 건조 고리 크기에 맞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거에요. 저희 집 건조 고리는 가로 폭이 0.3cm 정도 되는데, 도안대로 떴더니 걸 때 조금 불편하더라구요. 고리 구멍이 작다고 생각되시면 서너코 정도 더 떠서 고리를 만들길 추천드려요. 뜨개에 자신 없는 분들은 사이트에서 완제품도 구매할 수 있으니 참고 바라구요. 구매좌표는 바로 여기에요. >>>>>> http://imnothing.kr/

센치한 황마 수세미로 착한 설겆이하세요~ :)

 

솔직히 털어놓건데 저는 아직도 플라스틱 칫솔을 사용하고 있고, 플라스틱 튜브에 담긴 치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제로웨이스트가 되고자 노력하기 전 저렴하다고 쟁여놓은 것들이 남아있었기도 하고, 치약같은 경우 명절마다 선물로 들어오는 것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계속 플라스틱 칫솔과 치약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칫솔은 지금 쟁여두었던 것들을 모두 사용하고 나면 대나무 칫솔로 바꿀 것입니다. 칫솔의 경우 칫솔대에 대해서는 고민할 여지가 없으나 구매 시점이 되면 칫솔모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생각입니다. 

치약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습니다. 한달에 한번 꼴로 발생하는 치약 플라스틱 튜브 쓰레기를 바라보며 한달에 한번 또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었구나 후회하게 되죠. 패키지에는 분명 '플라스틱 분리배출' 표시가 되어있지만 사실 치약 튜브는 재활용되기 어렵습니다. 구조상 내부까지 깨끗하게 세척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현재로서는 남김없이 치약을 깨끗이 사용하고 과사용하지 않는 등 최소한의 실천만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 경우 지금의 플라스틱 튜브 치약에 대해서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만 제외하고는 만족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성분과 관련해 의견도 분분하고, 불소의 불필요성과 유해성에 대한 논란도 있으나 제 경우 성분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 타입이죠. 그래서 처음 대안을 찾았을 때, 시중 브랜드 치약과 성분은 유사하면서 플라스틱 패키지가 아닌 것을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더군요. 어느 책에서 알루미늄 재질 튜브 치약이 있다는 걸 참고해 그 브랜드를 구매할까 알아봤는데, 현재는 모두 플라스틱 튜브로 바뀐 후더라구요. 치약 업계에서 플라스틱 튜브는 편리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검증받은 패키지로 이미 확고하게 자리매김되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메탈 튜브를 사용하는 몇몇 브랜드를 알게 되었습니다. 화장품 브랜드 Aesop에서 나오는 치약이 그렇고 프리미엄 치약이라 불리는 Davids 치약이 그러한데요. 이 브랜드들은 환경을 고려해 플라스틱 튜브가 아닌 재사용가능한 메탈재질을 채택했죠. 전성분 또한 동물복지와 탄소발자국을 고려한 친자연적인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식으로 판매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해외직구를 통해서 구입할 수밖에 없어요. 또 이러한 메탈 튜브 치약들도 뚜껑은 플라스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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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튜브 치약의 대안으로 많이 언급되는 타입으로 고체치약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고체치약에 대해 알았을 때는 Lush 정도에서만 판매했었는데 최근에는 참 많은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어요. 하지만 전 플라스틱 치약의 합리적인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대부분의 고체치약은 물 없이 씹어서 양치질을 한다는 컨셉으로 간편성과 휴대성을 강조해 대부분 소포장으로 제작되거든요. 소비자가 처음부터 대용량으로 고매한 후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공병이나 패키지로 소분해 가지고 다닌다면 모를까 제품 구입부터 소포장으로 된 고체치약을 구매하는 것은 플라스틱 튜브 치약을 구매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어요. 그렇다고 고체치약을 플라스틱이 아닌 다른 재질의 병에 담아 파는 곳은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곳 중 플라스틱 패키지 없이 고체치약을 판매하는 곳은 Anything but Plastic(바로가기)이라는 블로그가 운영하는 쇼핑몰인데요. 이곳에서는 종이 패키지에 불소가 함유된 고체 치약을 판매합니다. 블로그에서는 불소가 함유되어있고 시중 민트향 플라스틱 튜브 치약과 가장 가까운 느낌의 고체치약임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어요. 이 곳에서 판매하는 고체치약은 Denttabs 제품인데, 정작 Denttabs가 정식으로 운영하는 쇼핑몰엔 플라스틱통에 담긴 고체치약만 판매하고 있죠. 우리나라에서도 고체지약 제조업체로부터 대용량이라도 종이 패키지 포장으로의 구매가 가능하다면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 www.anythingbutplastic.co.uk

블로그 샵에서는 플라스틱 튜브 치약의 대안이 왜 필요한 지 자세한 설명이 담겨있어요,(바로가기)

이러한 서칭과 정보 수집 후 제가 시도했던 대안은 유리병에 담긴 치약이었습니다. 이런 치약의 선두주자격인 영국 브랜드 Georganics(홈페이지 바로가기)의 치약을 해외배송해서 사용했죠. 제로웨이스트들과 플라스틱 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에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브랜드였기에 어떤 것인지 정말 궁금했구요. 치약 가격 만큼이나 비싼 배송비를 지불하고서라도 한번 써보기로 했습니다. 유리병에 담긴 가루 치약과 유리병에 담긴 명주 치실도 함께 구매했죠. 

영국에서 날라왔음에도 군더더기 하나 없는 포장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해외의 경우 상품보다 큰 택배 상자도 쓰레기를 더 많이 발생시킨다하여 제품 크기에 꼭 맞는 종이상자 포장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흔한 비닐 뽁뽁이 없이 타국에서 날아온 유리병은 상처 하나 없었습니다.

 

치약에는 작은 대나무 소재 스페츌라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걸로 콩알만큼 치약을 떠 칫솔에 묻혀 사용하면 됩니다. 가루치약의 경우 물을 묻힌 치약을 직접 가루치약에 넣어 가루를 묻혀 사용하죠.

이 치약은 불소가 함유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스피아민트향이라 해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강한 화학적인 민트향은 아닙니다. 시중 치약과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큰 차이는 거품입니다. 이 치약은 거품이 나지 않다보니 칫솔질하는 도중에 치약이 거울에 많이 튀는 불편함은 있어요. ㅜㅜ 강한 민트향의 입안 가득히 품어지는 인공적인 상쾌함은 없지만 세정력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치약이 떨어졌을 때 해외배송을 통해 유리병 치약을 구입하는 것은 이상적인 대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비행기를 타고 오기 때문에 국내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더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기구요. 또 재사용하지 않은 공병은 남발되는 플라스틱과 같은 쓰레기 문제를 발생시키죠. 

이럴 때는 정말 해외 제로웨이스트샵에 자리잡고 있는 리필샵(Refill Shop)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느끼게됩니다. 유통상의 문제만 없다면 세제, 치약 등은 대용량에서 조금씩 덜어서 용량별로 구매하는 리필 시스템이 있다면 편리하겠는데 말이죠.

제 경우 현재의 플라스틱 튜브 치약을 모두 소진한 후에는 치약을 DIY로 제작해 공병에 담아 사용할 계획입니다. Georganics의 치약이 남편도 저도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수제로 만드는 대안 치약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코넛오일, 베이킹소다 등 치약 제조에 사용하는 재료들은 제가 다른 이유에서 주기적으로 구입하는 항목이기 때문에 대용량으로 구입할 수 있다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구요. 

정리해보자면 현재로서 선택할 수 있는 플라스틱 튜브 치약의 대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메탈 튜브 치약

 - 장점 : 플라스틱 튜브보다 재활용 가능성이 높음.

 - 단점 : 대부분의 제품은 해외직구를 해야 함. / 뚜껑은 여전히 플라스틱 재질임. / 메탈 재질 분리배출 시 충분한 세척과정이 필요함.


2. 고체 치약(씹는 치약)

 - 장점 : 기존 치약과 가장 유사한 향과 성분으로 거부감이 가장 적음.

 - 단점 : 대부분이 휴대성을 강조해 플라스틱 포장된 소량으로만 판매됨.


3. 유리병 포장 치약

 - 장점 : 공병은 재사용하여 사용할 수 있음. / 알루미늄 뚜껑 사용 시 플라스틱 없는 치약 대안이 될 수 있음.

 - 단점 : 국내에 판매되는 유리병 치약은 전무한 상황이어서 필요 시 해외구매해야 함. / 재사용되지 않는 유리병 또한 쓰레기 문제를 유발함.


4. 죽염과 코코넛오일, 베이킹소다 등으로 직접 제조

 - 장점 : 시중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재료로 제조해 사용할 수 있음.

 - 단점 : 각 재료 구입 시 발생하는 포장재와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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