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지난지 벌써 6일이나 지났어요. 이 포스트를 할로윈 전에 꼭 써야지라고 마음먹었는데 너무나 바쁜 10월이어서 이제서야 올립니다. 저희 집은 10월이 일년 중 가장 바빠요. 가족들의 생일들이 모여있기도 하고, 아이들 원 행사도 이 달에 몰려 있어서 그래요. 그중에서도 아이들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건 할로윈입니다. 다른나라 전통에 왜 난리냐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요, 멋진 코스튬과 무서운 괴물 이야기, 달콤한 Treat or Trick 장난은 아이들에게 분명 매력적인 놀이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도 할로윈 모임이 두 번 있었어요. 하루는 키즈카페를 빌려 친구들과 파티를 했고 하루는 저희 집에서 할로윈 분위기로 꾸며 파티를 했죠. 의상은 2만원선에서 아이가 원하는 드레스를 인터넷으로 사줬어요. 머리띠와 요술봉까지 한 세트인 멋진 마녀 복장인데 가격까지 저렴하니 참 만족 스러웠죠. 하지만 이 의상은 말그대로 코스튬인걸요. 두 날 외에, 집에서 공주 놀이할 때를 제외하곤 거의 입지 않아요. 소재는 폴리에스터 100%입니다.

 

10월이 다가오면서 큰 아이는 본능적으로 할로윈의 달이 다가왔다는 걸 알고는 요즘 푹 빠져 있는 애니메이션 <리나는 뱀파이어>의 리나가 되고 싶다 했죠. 구글링을 해봐도 국내에는 리나 의상이 없어요. 해외직구로 구매할 수 있으나 대부분 폴리에스터 100%의 코스튬뿐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딸에게 '만들어줄게'라는 약속을 하고 말았죠... 머릿속에서만은 의상이 뚝딱하고 나왔으니까요. 

10월 첫날부터 엄청난 구글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 처음 찜해놓은 면 재질의 무지 핫핑크 반팔티는 계절이 바뀌어 절판됐죠. 특히 원피스는 마음에 드는 것 찾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리나는 반팔을 입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겨울이 곧 올 것처럼 추웠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천 사다가 재단해 만들어주고 싶으나 아직 제 미싱 솜씨가 그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답답했죠. 그러다가 자주 들르는 아동복사이트에 신상품이 올라왔는데 심플한 검정 원피스였어요. 소재는 코튼 60%, 폴리 40%. 한참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구글링이 너무나 힘들었던 탓에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절판된 핫핑크 분홍 면 반팔티가 눈에 아른거리는 중에, 마침 들른 유니클로에서 5천원에 세일하는 가오리형태의 분홍티를 찾았어요. 아이의 요구대로 뱀파이어의 푸른 피부를 상징하는 푸른색 히트택도 구매했죠. 하지만 집에 돌아와 소재를 확인해보니 폴리에스터, 레이온, 폴리우레탄의 조합이네요. 기능성 옷들일수록 가격은 더 비싸면서 소재는 왜 죄다 플라스틱일까요. 가격이 합리적인 면 소재 옷 찾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대신 집에서 만드는 소품들은 플라스틱 소재가 아닌 걸로 해주자 마음먹었죠. 먼저 원피스에 넣는 거미줄 모양은 면사로 재봉틀 작업해 완성했구요. 제 오랜 검은색 면 나시티를 잘라 목걸이를 만들고 오래된 머리띠의 살에 면과 울이 혼용된 실로 박쥐 모양 머리띠를 만들었죠. 박쥐 틀을 고정시키기 위해 낡은 끈에 포함된 철사를 이용했어요. 머리띠의 분홍 머리끈 부분은 면으로 된 자수실을 여러개 겹쳐 코바느질했습니다. 리나의 파란 장갑은 면사로 된 어린이용 목장갑을 사서 손가락 부분을 자르고 손바느질하여 만들었구요. 그 외 바지와 양말, 부츠는 기존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사용했어요.

완성하면 요런 모습이 됩니다. 삐뚤빼뚤 솜씨가 부끄럽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리나는 뱀파이어> 의상이 만들어졌습니다.

딸 아이는 이 옷을 입고 서울랜드 할로윈 페스티벌을 누볐고, 두 번의 친구들과의 할로윈 파티도 참석했죠. 그리고 할머니 생신날 가족 모임에서도, 동생 어린이집 체육대회에서도,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유치원 갈 때도 입고 가요.

 

100% 친환경소재로 할로윈 코스튬을 만드는 것은 비록 실패했지만, 한번 버리고 말 코스튬이 아닌 생활복을 만들어 쓰레기를 줄이고, 머리띠나 목걸이 등 소품은 기존 낡은 것들을 재사용해 자원을 아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딸 아이가 만족하고 좋아하해주니 그것만큼 보람있는 것은 또 없네요.

지난해와 달리 올해 할로윈 행사를 치루며 느끼는 풍경은 사뭇 달랐어요. 제 친구들도 몇 번의 할로윈을 치루면서 할로윈 때문에 구매하는 코스튬이 너무 약하고 불편하고 실용성이 낮다는 데 공감하고 있었어요. 제 친구들은 이왕 사는 옷, 일상에서도 병행해 입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꼼꼼히 따지더라구요. 활동성이 좋고 내구성이 좋은 걸로. 그리고 지난해 코스튬을 잘 활용해 다른 느낌의 의상으로 재사용하기도 하구요.

아래는 그런 친구들 중 하나가 아이를 위해 만들어 준 마녀 빗자루에요. 검정색 티셔츠로 마대 자루를 감고 여러 셔츠를 길게 잘라 빗자루처럼 묶었는데 한쪽의 별 포인트까지 낡은 옷으로 모양냈어요. 이렇게 멋진 마녀 지팡이 보신 적 있나요? 이 친구가 손재주가 뛰어나긴한데, 마트 매대에서 몇 천원에 살 수 있는 플라스틱 빗자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급스럽고 멋진 할로윈 소품이었어요. 사진에는 없지만 이 친구의 아이는 검정색 마녀 복장을 하고 왔는데, 기존 검정색 밸리 의상을 이용해 기성복으로 멋진 마녀 복장을 완성했더라구요.

할로윈 전통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10월이 되면 정말 많은 폴리에스터 코스튬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에 쏟아집니다. 한번 입고 버린다고 생각하니 플라스틱 섬유 쓰레기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지구를 위해 옷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1. 좋은 소재의 옷을 구매하고 2. 오래 아껴 입고 3.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솜씨 없는 저도 조금이나마 실천하기 위해 코스튬을 만들어보는 시도를 했어요. 이미 지난 할로윈이지만 내년엔 함께 플라스틱 코스튬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데 동참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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