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어요. 미션 장소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내 홈플러스. 제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1시간 30분 떨어진 거리죠. 쇼핑하는 기분으로 가족 모두가 같이 가려했는데, 거리가 너무 멀고 비가 많이 내려, 결국 엄마만 가기로 결정했어요. 많이 소심한 성격에 긴장했는 지, 전 날 밤은 잠이 잘 안오더라구요.

이 날의 드레스 코드는 화이트 티셔츠에 비닐봉지, 플라스틱으로 꾸미기. 어떤 걸 준비해갈까하다 아이들 미술재료로 모아 둔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목걸이를 만들었어요. 연두색은 작은 아이의 액상분유 뚜껑, 주황색은 큰 아이의 녹즙 뚜껑인데 날짜 보이시죠? 벌써 몇해 묵은 것들입니다. 만드는 방법은 엄청 쉬운데 현장에서의 반응 또한 좋았던 아이템이었어요. 색상 배치가 괜찮아서인지 언뜻 보면 병뚜껑인지 모르셨던 분들도 계셨구요.

지하철에서 열차기다리며 간밤에 만든 빨대별도 사진찍었어요. 저 별은 나름 제 야심작이었는데,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와 아름답게 이별하는 방법이랄까..두유팩에 붙어있는 빨대 5개로 만든 건데 플라스틱오염 퇴출 1호인 플라스틱 일회용 빨대와 이제 작별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연결고리 부분은 아이들이 사랑하는 마이쮸 개별 비닐포장으로 묶었어요. 나름 팔찌입니다.

의미 듬뿍 담아 소품 준비하고서는 정작 현장에서는 소소하게 치장하고 손바닥에 '비닐, OUT' 적은 뒤 소심하게 셀카 한 장만.... 남편에게 인증샷으로 보내니 남편 왈 "무슨 죄 지었냐고....". O.M.G.

그 날 약 30명 정도가 와주셨어요. 약속 장소에서 OT받고 매장 내부로 들어가서 자유롭게 쇼핑하고 야외 집결지에서 포장을 모두 뜯고 가져온 용기에 담은 후 같이 구호를 외치는 여정이었죠. 생각보다 많은 취재 인원에 깜짝 놀랐어요. 가장 핫한 퍼포먼스를 보여 준 참가자에 대한 관심은 아래 사진 정도. 지나가시는 분들, 오늘도 영화 촬영왔냐고... 

저 취재 열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분이십니다. 강렬하게 플라스틱 비닐봉지 과대포장 OUT 메시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계시는데, 많은 매체에 이분의 사진이 실렸어요.

이 후 야외 집결지에서 각자 산 물건들의 플라스틱 포장을 모두 뜯어 한 데 모았구요, 각자 가져온 용기에 다시 담았어요.

 

그리고 함께 모여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칩니다. 여러 메시지가 있었지만 가장 강렬했던 건 역시 "껍데기는 가라!".

전 어디있냐구요? 저 뒤 "포장재 가이드라인 마련하라" 팻말을 들고 있는 게 접니다. 사진도 소심하게.

아래 왼쪽 사진은 이 날 제가 장 본 것들이에요. 돌아가는 길도 먼 길이라 신선제품은 거의 못샀어요. 과일, 야채, 설탕, 아이들 간식, 그리고 제가 애정하는 그롤쉬맥주. 그롤쉬맥주는 친환경 병 디자인으로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어요. 저희 집에서는 500ml 플라스틱 생수병 대신 저기에 담아 놓고 외출 시 하나씩 가져가죠. 저런 모양의 병을 돈 주고 사려면 약 5천원인데 행사 가격으로 세 병에 9천5백원 정도에 샀어요. 맥주도 먹고 병도 얻고 일석이조 아닌가요. 그롤쉬는 홈플러스에서만 팝니다, 제 경험으로는요. 

제가 속도가 너무 느리고 현장 분위기에 정신이 없어서, 깜박하고 현장에서 포장재 벗기고 용기에 담는 사진을 못 건졌어요. 무거운 짐을 이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결국 남편에게 SOS쳐서 중간에 만나 차로 돌아왔죠. 집에 돌아와 축 쳐져있다가 겨우 정신 차린 후 장 본 사진을 찍어보니 참기름이 어디로 도망갔네요. 젤리는 아이들이 벌써 반 이상 먹어 버렸구요... 이렇게 플라스틱 어택@서울의 하루가 지났습니다.

 

다행히 여러 매체에서 관심을 가져줘서 노출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더구나 이 날 밤 11시에 SBS 스페셜에서 <식탁 위로 돌아온 미세 플라스틱>을 방영해 사람들의 관심도 부쩍 늘어난 것 같아요. 이 날 현장에서 만난 분들은 환경단체 소속이신 분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발적으로 동참한 사람들이었어요. 블로그 이웃분들이나 인스타그램 팔로워분들도 계셨는데 얼굴을 모르니 지나고 나서 이분도 여기 계셨구나 알게됐습니다. 이 날 제 개인적으로 뽑은 베스트 드레서였던 루비아님은 제가 즐겨 방문하는 네이버 블로그 이웃님이셨어요. 저보다도 더 생생하게 현장 분위기를 담아 후기를 작성하셨더라구요.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바로가기>>)

이런 행사 참여는 처음인지라, 많이 긴장되었지만 관심을 같이 하는 동지애가 느껴지는 현장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행사는 과거형의 뉴스거리일 뿐이겠지만, '맞아, 플라스틱 포장 너무 심해. 바꿔야해'라고 한 분이라도 공감 해주신다면 하루 고생을 보상하는 활력소가 될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경험이었고, 이름모를 어느 분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No More Pla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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