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생활을 해보자라고 마음 먹은 후 블로그를 운영한 지 약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3개월의 고비가 찾아왔어요. 요즘 저의 상태는 마음과 실천의 이질적 분리라고 할 수 있어요.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갈등하는 상황, 어떻게 해야할 지는 알겠는데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죠.
하나, 유별나다는 평가에 대한 두려움.
플라스틱의 남발, 해악성에 대해 관심이 늘다보니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이 부분을 언급하게 되요. 그리고 제가 제 성격을 아니 이 대화가 상대방에게 불편할 지 몰라 조심하게 되죠. 마치 정치나 종교얘기처럼 말이에요. 한편 플라스틱의 해악성, 실태에 대한 제 언급이 상대방에게 어떤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을 지모른다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도 꿈꿉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슈에 대한 중요도가 다르듯이 반응도 다르죠.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며 처음 글을 쓸 때도, 이 부분을 이해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환경 이슈에 대한 성선설-누구나 환경 이슈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나 후천적 영향으로 실천이 어렵다, 환경 이슈의 중요성을 알기에 체감하지 못하는 사소한 한 가지라도 친환경적인 실천을 누구나 하고 있다는 제 나름의 해석-을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 다짐을 했음에도, 실제로 이러한 대화가 진행되면 상처받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제게 상처가 된 반응 중 하나는 "OO은 플라스틱 안 쓰지"와 같은 말이었어요. 저는 보편타당한 상식을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OO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저를 별종인 사람으로 판단하는 꼬리표같은 말로 바뀐 거였죠. 이 말이 제게 왜 불편할까 생각하니 여러가지가 복합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제 설득이 먹히지 않은 데에 대한 허무함이고, 또 하나는 상대방을 설득하기에 부족한 제 어중간한 상황-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겠다 말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상당 부분이 플라스틱인 것-에 대한 자책, 그리고 제 스스로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인정하는 용기의 부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둘,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용기.
만약 제가 온 집안의 플라스틱을 모두 없애고 대체안을 모두 마련한 다음 시작했다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이, 가지고 있는 플라스틱들과 재사용 및 재활용으로 타협하고, 어쩔 수 없는 플라스틱 소비는 허용하다보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실천의 속도가 더디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하구요. 저는 열심히 실천한다고 생각했는데 시선을 어디에 돌려도 플라스틱은 도처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실천은 갈등의 연속입니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 수집에 대한 실천은 참 어렵습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는 제 오래된 신념이면서 6살 딸 아이도 아는 상식인데, 너무나 사람들은 쉽게 쓰레기를 만들고 버립니다. 가령 저희 아파트 놀이터에는 하교길 아이들이 버린 것 같은 과자봉지며 어른들의 담배꽁초가 자주 눈에 띄입니다. 미화원 분들이 일일이 청소하시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쓰레기를 '쓰레기네'하고 줍고 말면 쉬울텐데, 그 쓰레기를 보고 드는 첫 감정이 비상식적인 행동에 대한 분노와 짜증이다보니 오히려 손이 안가는 것 같습니다.
셋, Out of Control.
7월은 일년 중 가장 바쁜 달입니다. 연이은 생일과 행사로 마음과 시간을 써야할 곳이 많죠. 그러다보니 부딪히는 일상에서 순발력있게 플라스틱을 거부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주문제작한 딸 아이 생일 답례 케이크는 투명하고 예쁜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있었습니다. 두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페어에 갔을 때 받아온 대부분의 기념품들은 비닐과 플라스틱이었구요. 올 여름 제 나름대로 열심히 거부하고 있는 홍보용 플라스틱 부채는 벌써 두 개나 집에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고민고민하여 야심차게 들여놓은 새 물건을 택배로 받아보니 거대한 부피의 스티로폼 포장이 제 마음을 짓눌렀죠.
실천이 깔끔하게 No Plastic 결과로 되돌아 오는 경우가 적다보니 더욱 지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제 현실에 단비같은 책이 있었어요.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 류동수 옮김 / 양철북)」라는 책인데, 요즘의 제 심경을 어찌 그리 잘 아는 지, 제가 이 책의 저자인양 공감하며 읽었어요. 저자가 일년 반 동안의 좌충우돌 상황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을 거쳐 어느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겠죠. 제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심정을 너무나 잘 담았더라구요. 이 책의 끝맺음 말은 저를 따뜻하게 위로합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그런 의욕을 유지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 한마디만 더. 한두 가지의 작은 태도 변화로 시작해서 서서히 그러나 확고하게 더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 경험상 이런 일은 재미가 있고 기분이 좋으면 스트레스와 양심의 가책을 갖고 할 때보다 훨씬 더 잘, 그리고 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목표를 너무 크게 잡으면 실패하기 쉽다. 그리고 의욕이 저하되었을 때는 멋진 자연의 품에 안겨 자신의 행동의 동인이 무엇이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그것과 서로 잘 어울리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지금 제게 필요한 건 반성과 자책보다는 여백과 여유인 것 같습니다.
P.S.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 '올바른 소비'를 위한 팁의 일부는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공유합니다.
<물건을 구매할 때 항상 유념해야 할 사항들>
- 대규모로 광고하는 제품들은 특히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 품목별로 자기가 구입하는 제품을 정해 둔다.
- 포장이 간결한 제품을 선택한다.
- 물건을 담아 올 용기와 천 쇼핑백 또는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닌다.
- 공짜로 주는 비닐봉지는 반드시 거부한다.
- 가능한 한 천연재료, 특히 자기 지역에서 난 것을 선택한다.
- 합성소재를 피할 수 없을 때에는 품질과 내구성이 좋고 필요할 경우 수선도 가능한 제품을 선택한다.
-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라는 격언을 항상 염두에 둔다.
- '옛' 해법을 더올려 본다.
- 각종 세제의 사용량을 감각적으로 부족하다 싶을 만큼 줄인다.
- 식료품이나 기타 소비재를 자기가 사는 곳 바로 인근에서 살 수 있는지 항상 확인한다.
- 필요하다면 공동구매를 적극 조직한다.
P.S. 혹시 저와 같은 고민이신 분이 계실까요? 그런 분들 중 이 책을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댓글 달아주세요. 제가 읽은 책이지만 드림하고 싶습니다.
'#No More Plastic :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방엔 천연 수세미, 욕실엔 천연 스펀지. (0) | 2018.08.16 |
---|---|
2주간의 연휴, 아이디어들과 실천 (0) | 2018.08.07 |
7월1일 플라스틱 어택@서울 참가하고 왔어요! (4) | 2018.07.03 |
쓸(SSSSL) Vol.2가 도착했어요. (0) | 2018.06.28 |
작은 변화들 : 생수 끊기 / 자연모 세척솔 / 나무도마 / 킨더조이 장난감과 작별 (2) | 2018.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