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역시나 블랙 프라이데이
매년 11월 넷째주 금요일.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부터 미국은 연말 최대 규모의 쇼핑 기간에 돌입합니다. 블랙 프라이데이의 ‘Black(검다)’이라는 표현은 상점들이 장부에 적자(Red ink) 대신 흑자(Black ink)를 기록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1960년대 필라델피아에서 추수감사절 다음날의 극심한 교통체증을 비유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구요.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는 기업들의 한 해 매출 2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시작된 블랙 프라이데이는 유럽 전역과 아시아까지 널리 퍼지고 있지요. 우리나라도 2015년부터 소비 부흥 정책의 일환으로 블랙 프라이데이를 벤치마킹한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실시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그 범위와 영역을 확대하도록 정부에서 지원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었죠.
전 세계가 소비의 축제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열광하고 있는 반면, 다른 모습도 있습니다. 강박적인 소비, 넘치는 플라스틱 패키지, 버려지는 사용가능한 물건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그린 프라이데이(Green Friday)'가 바로 그것이죠.
어디서 들어봄직한 이 네이밍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프로모션과 마케팅, 사회공익활동의 일환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을-겨울의 빅세일 기간인 블랙 프라이데이와 대비해 봄 기간의 빅세일 기간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기도 하고, 친환경활동과 연계한 사회공헌 및 마케팅활동의 네이밍으로도 사용된바있죠. 어찌보면 평범할 수 있는 이 네이밍이 올해는 좀 더 특별하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Le Green Friday!
블랙 프라이데이는 미국에서 유래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반면, 그린 프라이데이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17년에 ENVIE라는 폐기물 재활용 사회적기업에 의해 창안된 이 운동은 2018년 파리시의 지원을 받으며 REFER(폐기물 재활용 기업), Altermundi(공정무역 기업), Dreamact(윤리적인 소비 기업), Ethiquable(공정무역 조합), Emmaus(빈곤 퇴치 조직)이 합류하며 공식적인 시민활동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그린 프라이데이의 문제인식은 블랙 프라이데이가 제조품의 과잉 생산과 과소비로 재생 불가능한 오염 물질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운동에 참여하는 기업은 고객에게 평소와 동일한 금액을 청구하되, 당일 매출액의 15%를 협회에 기부하도록 합니다. 이 기부금은 세계 빈곤 퇴치, 환경 운동 등에 사용되죠. 시민들은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를 하는 업체 물건을 현명하게 판단하여 구매하고 과소비를 부축이는 소비 촉진 및 격려 활동을 거부하구요.
Le Green Friday 홈페이지(www.greenfriday.fr)
올해 총 180개의 매장이 이 Le Green Friday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관련 조직과 매장에서는 리사이클링, 재사용 체험도 진행됐는데요. 수리하여 사용하고 환경을 생각한 제품을 체험하고, 윤리적인 소비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마련되어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참여 기업 중에는 플라스틱 대안 제품 판매 및 제조사들도 있었어요. 홈페이지 내 아래와 같은 지도에 나타난 표시를 클릭하면 각 지역과 매장에서의 그린 프라이데이 활동과 체험 프로그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운동에 참여한 기업들 중에서는 아래와 같이 자체적으로 그린 프라이데이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SNS를 공유하기도 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설명해 수천명으로부터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패러다임의 변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이러한 운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동안의 공통된 경제논리는 소득이 소비로 이어지고 그 소비가 새로운 소비를 창출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논리였죠. 그로 인해 블랙 프라이데이는 광박적인 소비, 과도한 쓰레기라는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구요. 특히 쓰레기 대란을 경험하고 플라스틱에 질식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합리적 소비, 알맞은 생산, 쓰레기의 최소화로 패러다임이 옮겨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소비 촉진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이제 막 블랙 프라이데이를 권장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좀 먼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의 노력에도 좀처럼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리지 않는 현 상황에서, 블랙 프라이데이의 부작용을 이야기하고 그린 프라이데이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은 너무 앞서나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성적 시각에서 현명한 소비를 하자는 비판적인 목소리는 나라를 불문하고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멀쩡히 잘 사용하고 있는 TV를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바꾸기보다는 바꾸더라도 기존 제품을 재사용,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거나 기존 제품을 오래 사용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보다 현명하다는 것은 모두들 아는 사실일 겁니다. 그리고 누구나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고 나에게 딱맞는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정말 멋진 소비라는 것두요.
이 운동의 또 다른 의미는 현명한 소비에 부합하는 기업들을 단결시키고 부각시키는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 친환경제품, 수공예 및 핸드메이드, 재사용 및 리사이클링, 업사이클링 업체 등이 그린 프라이데이라는 운동 안에 모여 한 목소리를 내고 블랙 프라이데이와 비교되는 활동으로 이를 지지하는 소비자들로부터 마케팅 효과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죠. 아직 초기여서 효과가 있다고 확신해 말하기는 다소 이르지만 앞으로 이 활동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다면 분명 마케팅 효과가 수치로 나타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막 이러한 업체들이 자생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사정을 돌이켜볼 때, 그린 프라이데이는 앞으로 시도해볼만한 활동인 것 같습니다. 서울새활용플라자 등이 주축이 되어 그린 프라이데이와 비슷한 날을 정하고 전국적으로 이 활동에 동참할 기업들을 모집하고 이 기업들을 찾아볼 수 있는 지도를 제작해 배포하고, 한 날 전국적으로 동시에 축제와 같은 활동을 하는 것. 가능하지 않을까요? '달 시장', '모두의 시장'과 같은 대안 마을장터가 한 날 전국적으로 행사를 개최하는 데 이 컨셉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올해 본격적으로 시범을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점차 확대될 것이 기대됩니다. 블랙 프라이데이가 이제 막 활성화되려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몇 년안에 그린 프라이데이는 가치있는 소비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살포시 기대해봅니다.
P.S. 여담 : 베네딕트 컴버배치 팬 인스타그램의 사진 한 장
사실 이 정보를 알기에 앞서 제가 애정하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의 팬 인스타그램에 아래와 같은 사진이 올라왔어요. 올 12월 20일에 개봉하는 그린치라는 애니메이션에 베네딕트가 그린치 목소리역을 맡았는데요. 관련해 몇몇 인터뷰에서 베네딕트는 과대포장과 소비, 플라스틱 적게 사용해야한다는 말을 남겼어요. 본인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지 않고 매년 재사용하고 있으며 그 중 하나는 콜라 캔으로 만든 거라고 했구요.(인터뷰 바로가기) 그와 일맥해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이해 쇼핑하기 전 3R(Reduce, Reuse, Recycle)을 기억하자는 메시지가 팬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거에요. 스타와 관심사가 통하는 것은 참 신나는 일이죠. 그래서 블랙 프라이데이와 연계해 유사한 내용을 검색하다가 알게된 게 바로 프랑스의 그린 프라이데이 운동이었답니다. 우리도 함께 기억해요. 아직 남은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기간동안, 아니 연말연시 세일까지 Reduce(적게 사용하고), Reuse(재사용하고), Recycle(철저히 재활용하기)! :)